방을 치우다 책살위의 꼬깃꼬깃한 종이쪽지를 무심히 편든 내 눈에…….
『2524 이 순란
꼭 은혜 갚을게요.
엄마 우리 엄마 얼굴은 달님같이 환하다. 늘 웃는 엄마 얼굴엔 인자한 미소가 감돈다. 엄마 딸이 커가는 걸 대견스러이 바라보시면
슬픈 일이 있어도, 기분 상하는 일이 있어도 꿋꿋이 참고 나가시는 엄마.
내가 크면 꼭 보답해야지…….
현모양처 하지만 우리 엄한 현모양처를 서너 명 갖다 대어도 남을 것이다 엄마는 낮엔 가게에 나가시고 밤에 들어와 일하신다.
매우 고달프신 것 같다.
밤엔 우리가 공부할때 라면을 끓여주신다. 늦은 밤에 한마디 불평도 없이…….
성당에도 잘 나가신다.
아버지의 늦은 귀가시간으로 가끔 빠지는 날도 있다.
엄만 참 용하시다.
낮에 일하고 밤에 일하고, 성당에 다니시고 늠름히 책도 읽고 또 때때로 글도 쓰고 참 부지런도 하시지.
우리 때문에 고생하시는 우리엄마.
내가 커서 돈을 많이 벌어 호강시켜 드려야지.
그러나 지금 내가 엄마에게 보답하는 길은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이다.
엄마! 제가 이 은혜 꼭 갚을께요』
두번 세번 읽어보면서 뒤통수를 한대 얻어 맞은 듯 찡함과 함께 쓸쓸한 미소가 내 얼굴에 번졌다.
나혼자 이세상 모든 어려움을 겪는 듯하다 심정으로 조금만 고단하고 어려우면 큰딸인 저에게 엄마 사정을 몰라준다고 온갖 푸념과 짜증 잘 부리고 소리 잘 지르는 저의 엄마를 그렇게 과대평가 해준 것은 아직도 철없는 어린애로만 여겼던 중학교 이학년짜리 딸아이에게 이건 완전히 한대 얻어맞은 비참한 몰골이 되어버린 처지가 되었다.
이제까지의 나의 생활이 부끄러워지면서 아이들 앞에서의 엄마로서의 처신이 한결 어려워짐을 느꼈다.
언행을 삼가고 신앙생활의 모범을 보여 정말 제가 생각하는 그런 좋은 엄마가 되도록 노력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면서 언젠가 만났던 담임선생님의
『오늘 순린이 혼좀 냈어요. 특별활동시간에 어머니에 대한 글을 짓게 하고 나가서 읽으라고 했더니 쓰기는 쓴 모양인데 영 안 읽어서 혼내주었어요』 하던 말씀에서 그것을 읽었더니 듣고 계시는 아빠가 『다늙은 할머니 얼굴이 무어 달님같이 환하다고、야! 두 번만 달님 같다가는 원 ……. 그리고 자기 게을러서 성당에 빠지는 것을 모녀가 다 내 탓만 하는 거지. 이거 나만 몹쓸 사람되는것 아냐』 하시며 불평을 털어놓으신다. 그러자 막내 숙정이가『왜 엄마가 할머니 같아? 아버지는 거짓말쟁이야』 하는 게 아닌가.
『이게 언젠가 특활시간에 나가서 읽으라고 해도 안 읽었다는 거냐. 왜 안 읽었어?』 하자、 아빠가 『다 거짓말인걸. 읽을 수가 있나! 양심이란 게 있지』 하며 웃으신다.
『아버진、그게 어째 거짓말 이예요. 정말 엄마가 안 그런가요 뭐……. 쓸 때는 몰랐는데 읽으려고 보니까 너무 칭찬만 쓴 것 같아서 멋쩍어서 안 읽었지』
생활이 고달파 심신의 어려움이 겹치더라도 제발 같이 항상 달님 같은 미소를 잃지 않는 좋은 엄마가 되어 자라나는 소녀의 가슴에 구름을 끼워주지 않는 착한 엄마가 되어주도록 다시 한 번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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