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하느님의 섭리에 따라 기이하게 주님의 품에 안기고 지금까지 살아 남을 수 있었다.
지금부터 32년전 해방 이후의 어수선함이 어느 정도 가라앉을 5ㆍ30선거 때였다. 자유당 경북도당 여성 최고위 원장이었던 金某 여사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다.
나에게 선거 참모장이 되어 달라고 간곡히 부탁했지만 그 당시 某여고에 재직 공무원이었던 나는 생각도 상반되고 해서 이를 거절했지만 끝내는 여시학까지 보내와 나를 못 견디게 굴었으며 심지어는 거액의 금품까지 내놓으며 애원을 했다.
나는 이 같은 인격 무시의 농간에 불쾌하기 짝이 없었으나 그 당시의 공기는 말할 수 없이 험악했고 호유증도 두렵고해서 웃는 얼굴로 거절했다.
그 후 김 여사는 낙선되었고 장부(丈夫)가 도학무국장이었던 관계로 교육계도 선거운동의 협력도에 따라 많은 직원이 파면 또는 좌천이 됐다.
나는 억울하게도 여성동맹 조직부장이라는 누명을 쓴 채 경찰서 그리고 몇몇 기관 등으로 붙들려 다니면서 형언할 수 없는 고초를 당했다.
고문에서 오는 육신적 고통과 정신적으로는 불안ㆍ초조의 나날을 감방에서 지내다가 하루는 12시가 지난 한 밤중에 모기관 대장의 문초를 받았다.
대장은 거짓말을 하면 지금 당장 경산 골로 간다고 하면서 여성동맹 조직부장을 언제부터 했느냐고 다그쳐 물었다. 정말 하늘이 캄캄했다. 나는 나의 전 생명의 밑바닥에서부터 우러나오는 애절한 열망으로 하느님께 살려 달라고 빌었다.
그리고 대장에게는『저는 풀잎의 이슬에 가지도 인정을 베풀려고 하는 사람인데 제가 어찌 살인ㆍ방화를 조직하는 악한 사람이 될 수 있겠습니까? 저를 똑바로 한번만 봐 주십시오.』하였더니 대장은 눈물을 글썽이면서『한대위, 난 이 여자 취조 못하겠소. 취조좀 하시오』하고 나가 버렸다.
그 후에 들은즉, 그 길로 대장은 김 여사 집에 가서 아무리 조사를 해도 조직 부장은 커녕 당원으로 입당도 안 돼 있으니 나를 총살 시킨 후 위증일 때는 김 여사도 총살이라고 하니 그제야 내가 여성동맹 조직부장이 아니라는 도장을 찍었다 한다.
나갔다 돌아온 대장이 깍듯이『서 선생님 모셔다 드릴테니 가십시다.』고 할 때 이제 경산 골로 나를 죽이러 가는구나. 그래서 존칭을 쓰는구나. 라고 생각하니 정신이 아찔했지만 따라 나설 수 밖에 없었다.
땅을 디디니 꺼졌다 솟았다 하고 넋을 잃고 얼마를 가니 우리 집으로 가는 것이었다.
나는 이렇게 풀려난 후 극도의 신경쇠약으로 눕게 되어 8개월 동안 몇 차례의 입원과 퇴원을 거듭하며 섭양했지만 백약이 무효로 피골 만남아 죽을 것만 같았다. 온 머릿속은 먼지가 꽉 낀 것 같고 바보처럼 되었으나 이상하게도 십자가만 보면 살 것 같고 성당의 종소리만 들려오면 마음의 희열을 느끼며 나도 모르게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리게 됐다.
그리고 난롯불에 손을 넣어 보고는 취조실과 같은 이 세상의 지옥 불도 무서운데 말세의 지옥불은 얼마나 무서울까라고 생각할 때 하느님의 징벌에 대한 무서움이 싹트고 차츰 신앙에 의지하게 됐다 그리하여 중환자의 몸으로 부축을 받아 겨우 성당으로 인도됐다.
그 엄용하고 장엄하고 거룩하고도 평화스러운 성당은 진정 하느님의 집처럼 느껴지고 지상의 천국처럼 느껴졌다.
나는 성당에 진작 나오지 못한 회한을 금치 못하면서 입교를 갈망하며 중환자의 몸으로 매일같이 무조건 성당엘 가는 일과가 계속되었다.
그런데 하루는 꿈에 지금 계산동성당 예수성심성화상의 예수님이 긴 막대기로 나를 가리키며 거기 서라고 했다.
나는 엎디어 예수님께 이 죄 많고 불쌍한 여인을 용서해 달라고 눈물로써 애원하다가 잠에서 깼다. 그런지 3일후 또다시 꿈에 발가벗은 어린아이가 나타나『내가 영해 예수인데 그대의 정성이 지극하여 은혜를 베푸니 다가오는 6월 12일 이 자리에 오라』고 했다. 꿈에 서본 그 자리는 바로 성당 안이었다.
나는 심약한 자의 단순한 꿈이라고만 볼 수 없는 주님의 부르심이라고 확신했다. 그리고 병문안을 온 조 마리아씨에게 이야기를 한 후 드디어 꿈대로 6월 12일에 관면영세를 받았다.
그러나 나는 먼지가 꽉 낀 것 같은 머리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면서도 그저 성당에 가고 싶은 일념뿐이었고 새벽 시간도 채 되기 전에 어둠을 헤치고 집을 나가 잠긴 전당문 밖에서 기다리기만 해도 좋았다.
그러기를 만 일년、그날이 또 6월 12일이었다. 미사 참례를 한 후 나오는 순간 언제나 먼지가 꽉 낀 것 같은 머리가 마치 산에 안개가 걷히듯 차츰 맑아졌다.
하도 이상해서 성당 마당에서 머리를 두어 번 흔들어 보고 옛날 좋아하던 시한 수를 외워 보니 줄줄 나왔다. 나는 본 머리를 찾았다. 병신이 안되었던 것이다. 성당 안으로 다시 들어서니 감사의 눈물이 그 치릴 않았다.
『주님! 감사합니다. 당신은 저에게 영육 간의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이 무한하신 은혜에 저는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일생을 정성되리. 주님께 바치겠습니다. 당산의 영광을 위해 、교회를 위해、남의 구원을 위해 정말로 헌신하겠습니다.』라고 감사의 기도를 드리며 감사의 눈물을 한없이 흘렸다.
기쁨에 벅찬 가슴을 안고 집으로 돌아와 가족과 함께 감사했다.
그런 후 나의 건강은 차츰 회복되어 일상생활이 정상적으로 되었고 교장 선생님은 나를 다시 학교로 불러 주셨고 전공인 자주작품 활동도 계속하게 되어 화려한 경력을 쌓았지만 누구보다도 주님의 은혜를 많이 입은 사람으로서 어떻게 하면 주님을 기쁘게 해 드릴 수 있을 것인가가 나의 일상생활의 지침이 되어 있다
나를 죽음의 위기까지 물고 갔던 김 여사가 8년 전 정신이상병으로 뇌수술을 받다가 작고했다. 이 소식을 전해 듣고 그의 영혼을 위해 진심으로 기도했다.
『주여、 김 여사가 아니었던들 저는 주님을 알아볼 수 없었을 것입니다. 저의 영혼을 주님에게로 가까이 가게 한 영혼의 은인입니다. 주여! 그의 영혼을 불의 명복을 위해 주께 간절히 여기소서.… 그의 명복을 위해 주께 간절히 기도합니다.』라고.
그리고 일생을 신앙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우선 알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믿는 진리의 하느님은 어떤 분이며 그리스도는 누구이며 사랑은、고통은 영원한 행복은 무엇이며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알기 위해 교리반을 빠짐없이 찾아다녔고 서적들을 구입하여 탐독하면서 열심히 공부를 했다. 그리워하여 어슴푸레하던 하느님의 존재도 더욱 확실해졌고 영혼의 존재와 불멸성도 더욱 확신하게 됐다.
어찌하여 나는 이 구원의 진리를 좀 더 일찍 알지 못했던가.…. 정말 원통하기도 했지만 늦게나마 주님을 알게 된 기쁨과 감사의 정으로 행복하기 그지없다. 이리하여 주님은 내게서 멀리 계실 수 없으며 항상 가까이 계시며 나는 온전히 주님에게 의지하여 살지 않고는 잠시라도 허망하고 불안하기 그지없었다.
나의 인생관은 뚜렷이 정립되었고 나의 신심 생활은 차츰 그리스도와 자주 밀접한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그리고 생각과 말과 행위에 앞서 주님의 성의 (聖意) 은 살피고 그르침이 없기를 애써 노력했다.
이성의 나약으로 성의에 벗어나는 일이 있을 때는 즉시 십자가에 매어 달리신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주여! 저는 당신을 사랑하지 못했습니다. 당신의 마음에 상처를 드렸습니다. 이미 천한 여인의 영혼을 불쌍히 여기소서.』하며 간절히 애원한다. 그리고 주님과 항상 같이 살아가자면 주님의 일을 언제나 기꺼이 맡아 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감실 앞에 언제나 꽃 한 송이를 놓아 드리고 레지오와 봉사회를 맡아 복음 전도와 자선사업에 앞장서고 성당 청소를 하는 등 사도직 활동으로 헌신 봉사하는 동안 주님과 같이 살아 갈 수 있었다.
자수를 할 때도 그 한바늘 한바늘에 그리스도의 마음을 헤아리며 정성을 다하면 과연 훌륭한 작품을 이룩할 수가 있다.
내가 자수계에서 영예를 얻는 모든 일들도 오직 그리스도의 영광의 덕분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나는 일상생활을 토막토막 갈라 놓지 않고、주님과의 일치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
끝으로 예수님을 바라보고 물위를 걸어가던 베드로가 사나운 폭풍에 마음이 솔린 순간 그는 물에 빠졌다. 이것은 바로 그리스도를 잊어버린다 순간 그만 낭패를 당한 것이다. 나는 이것을 항상 나의 일상생활에 적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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