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자는 못돼도 불효자는 되지말야야 갰다고 늘 생각해온 내가 한분밖에 안계신 어머니의 임종을 지켜보지 못했다.
어머님은 고향인 충남 부여에서 사셨고 나는 서울에서 생활하다 보니 어쩔 수 없었던 일이라고 여길 수도 있겠으나 두고두고 한스러움을 가눌길 없다.
모두 자기 앞가림 할 만큼 자라서 가정을 꾸미고 살아가고 있는데도 일흔다섯 한평생을 오직 자식들 걱정만 하시다가 조용히 하늘나라로 가신 우리 어머님!
회사에서 일하다가 위독하시다는 형님의 시외전화를 받고나서 떠날 채비를 하던 중에 운명하셨다는 연락을 다시 받고는 얼마나 가슴을 쳤던가.
아버님이 일찍 돌아가셨기 때문에 어머님은 우리들을 키우고 가르치시느라고 무척 고생을 하셨다.
『홀어미 밑에서 자라 버르장머리 없다는 소리를 들어서는 안 된다.』 고 타이르시며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말씀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해주셨다.
위로 형님과 누님이 계셨지만 그때 이미 결혼한 후여서 어머님의 말씀은 주로 나와 일곱 살 아래인 동생에게 향한 것이었다.
아버님은 내가 중학교 2학년 때에, 동생이 초등학교 1학년 때 돌아가셨다. 당시 죽음이 어떤 것인지 미처 깨닫지 못했던 나는 그저 아버지가 안 계신다는 사실이 서러워 울기만 했다.
허전한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가톨릭에 관심을 가졌고 1년 반 동안 교리를 배워 「바오로」 란 본명을 세례를 받은 것이 56년 4월 10일이었다.
시골 살림이라 허드렛일이 많았고 집안에 일할 사람이 없던 우리 집은 내가 일요일만이라도 집안일을 거들어야 할 형편이었으나 어머님께서는 믿지 않으시면서도 나에게 주일을 지키도록 해주셨다.
아마도 자식 잘 되기만을 비는 뜻으로 그렇게 하셨을 것이고 나도 그처럼 애정 어린 격려를 해주시는 어머님께 늘 감사하는 마음을 가졌었다.
언젠가 어머님께 한번 가톨릭을 믿어 보실 의향이 있느냐고 여쭈어 보았으나 뚜렷이 반대는 하지 않으시면서 승낙하기를 망설이셨다.
서울로 진학하고 난 후부터 나는 어머니를 위해 늘 기도했다. 특별히 시간을 따로 낸 것이 아니라 집에서나 직장에서나 길에서나 틈이 나는 대로 주모경이나마 계속해서 바쳤다.
마지막 순간에라도 우리 어머님께 자비의 손길을 펴 주십사는 소망과 함께 - . 운명하셨다는 연락을 받고 고향으로 가는 차안에서 나는 속으로 「대세라도 받으셨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수없이 했다.
집에 도착해서 유해가 모셔진 방안으로 들어서는 순간「김 마리아」 라고 또렷이 적혀 있는 것을 발견했을 때의 기쁨은 어찌 표현하랴.
수녀님께서 오셔서 대세를 준 후 얼마 안 돼 숨을 거두셨다는 말을 전해 듣고 나는 하느님께 깊이 감사를 드렸다.
진실로 믿기 만하면 무엇이나 들어주신다고 성경에 쓰여 있기는 하나 나같이 부족 한사람의 기도까지도 이처럼 들어주시다니….
더구나 어머님의 장례미사를 지켜본 동생 가족도 지난번 성탄때 모두 세례를 방아 하느님의 품에 안겼다.
지난 20여 년 동안 서툴게나마 조금씩 바쳐 온 기도를 하느님께서는 한꺼번에 크게 갚아 주셨는가 보다.
주여 김 마리아와 정 마리아 (이 분은 내가 늘 기도로 도운 할머니인데 어머님과 같은 날 돌아가셨다) 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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