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가훈(家訓) 갖기 운동이 벌어진 적이 있었다. 조금은 인위적이어서 마음속으로 꽤나 저항을 느꼈었다.
그러나 곰곰 생각해보면 가족 전체가 공통된 이상(理想) 을 갖고 노력하는 것이 나쁠 것은 없다고 여겨진다. 마찬가지로 학교에는 교훈이. 회사에는 사훈이 있어 그 학교나 회사가 지향하는 바를 추구해 나가고 있다.
그렇다면 본당에도 그와 같은 공동체적 목표를 정해 놓고 함께 노력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우리본당의 이상은 평등ㆍ봉사ㆍ나눔 이다.
창설된지 4년 남짓한 우리 본당이 그런대로 틀이 잡혀가고, 다른 본당에 비해 그다지 뒤지지 않는다는 소리를 듣게 된 것은 이러한 이상을 바탕으로 1천8백여 명의 형제자매들이 헌신적으로 노력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나 자신의 자세를 가다듬는 마음으로 주보 제1호에 실렸던 우리 본당의 이상을 되새겨 보았다.
「평등 - 인간은 하느님 앞에 평등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재산 권력 지식이 있고 없음과 성별에 따라 심한 차별대우를 합니다.
그리스도는 먼저 가난하고 억눌린 사람을 위해 강생하시고 또 태어나실 때부터 스스로 그 길을 택한 것을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봉사 - 지배받기 보다는 지배하기를, 봉사하기보다 봉사 받기를 세상은 원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봉사 받기보다 봉사하기 위해 왔다고 하셨고 교회는 세상을 권위로 봉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으로 봉사하기 위해 세워졌습니다.」
「나눔 - 내가 가진 재산의 진정한 주인은 하느님입니다. 우리는 그 관리자 입니다. 재산의 많고 적음이 그 사람의 품위를 가늠하는 것이 아니고 맡겨진 재산을 얼마나 하느님의 뜻대로 사용하는가에 따라 보다 인간 다워질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들 위해 주신 재산을 한사람 한 단체. 한 국가가 독점함으로써 빚어지는 비극적 현실을 우리는 때때로 봅니다. 이것은 골고루 나눠 갖도록 원하시는 하느님의 뜻에 대한 명백한 거역입니다.」
신접살림처럼 어설프기 짝이 없는 신설 본당의 초대 총회장으로 입명되던 날부터 나는 적어도 우리 본당의 분위기를 이에 맞게 이끌고 나가야겠다고 속으로 몇 번이고 다짐했다.
그리고 우선 나부터 몸소 실천하려고 노력해 왔다.
나의 이러한 결심과 행동이 우리 본당 신자들, 그보다도 우리 주하느님께서 어떻게 평가하고 계신지 나는 모른다.
다만 나의 어리석은 생각으로는 도저히 이뤄질 수 없는 일들이 어렵지 않게 계획했던 대로 좋은 결과를 가져올 때마다 나는 하느님의 무한한 은총과 형제자매들의 말없이 마음의 장벽을 허물어 내지 못하고 끼리끼리 모여서 서로 다른 주장만을 내세운다면 누가 우리를 통해 그리스도를 따르겠는가.
큰 회사 회장 사모님이 들어 않을 자리도 없는 셋방에 찾아가 연도를 바치고 두부장수로 겨우 끼니를 이어가는 아주머니가 자기보다 못한 형제자매들을 위해 아낌없이 희생을 하는 것이 우리 본당의 분위 기압을 나는 수없이 느껴 왔다.
이런 것들을 모르겠으나 순간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고 작은 일에도 충실 하려고 애쓰는 우리 논열 공동체가 온 누리를 비출 날이 반드시 오리라고 확실히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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