神父님 ! 원래 人生이란 會者定離요 人命 在天이라 하였지만 신부님께서는 이제 超然히 가셨습니다.
인생의 완숙기를 맞아 원숙하신 경륜과 쌓고 쌓으신 德性으로 스스로 끊임없는 그리스도의 지현과 肉化로 더 많은 것을 주시기를 바라는 동료 및 후배 사제들과 황야의 거친 들판에서 방황하면서 착한 목자의 인도를 갈구하는 양들을 남겨도 신채 가셨습니다.
신부님, 신부님을 잃은 슬픔과 아쉬움 어찌 필설로 다할 수 있으며 아픈 가슴 헤아릴 수 있겠읍니까? 하오나 굳이 슬픔에만 잠길 수 없읍니다.
신부님은 가셨어도 신부님의 고결한 인품, 깊은 기도, 철저한 청빈과 순결, 뛰어난 인내와 순명, 크신 자애를 통하여 심어 주신 참 사제 상은 성직자들과 신자들의 가슴에 깊이깊이 새겨져 있고 항상 살아 움직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짐승은 죽어서 가족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남겨야 한다고 했습니다만 신부님께서는 이름이 아니라 단순히 부르심을 받은 사제의 길을 넘어 『그리스도를 가장 깊이 알고 사랑하셨으며 그분을 가장 닮아서 그 불안에서 그분과 함께 사신』사제상을 길이길이 남겨 놓으셨습니다.
신부님! 많은 분들이 신부님께서 생존하여 계실 때 신부님을 가리켜「성인 신부」라고 했던 말이 신부님께서 가신 지금 더욱 세차게 느껴 오고 있고 그리하여 저희는 「하늘나라에 저희를 위한 중개자」를 모실 수 잇기 때문에 비통과 아쉬움을 억누를 수 있습니다.
신부님. 솔직히 말씀드려 세속의 지혜로 볼 때 신부님은 약삭빠르지도 똑똑하지도 못하셨고 오히려 주변 없는 분으로 보이셨습니다,
그러나 신부님! 신부님께서 세속을 잘 모르셨기에 더욱 주님 안에서 주님과 함께 살으셨고 가진 것이 없고 욕심이 없으셨기 내적으로 풍부하고 자유로우셨으며 겉으로 하려하지 못하셨기에 안으로 더욱 깊고 넓고 뜨거우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부님의 깊고 그윽한 덕(德)의 향기는 잔잔한 호수의 파문처럼 가슴에서 가슴으로 퍼지고 있고 그 德性은 꽃피고 열매 맺고 있습니다.
신부님의 덕성은 헤아림이 도리어 누가 될 만큼 크셨기에 신부님께서 歸天하셨다는 비보에 많은 분들이 오열 속에서도 숙연히 묵상을 했고 신부님의 장례미사엔 동창이신 교구장 황 주교님, 김수환 추기경님, 김재덕 주교님을 비롯해 90여 명의 사제들, 1백50여 명의 수도자들, 대성당을 곽 메운 신자들이 신부님을 되새기었고 장엄한 장례 행렬을 이뤘습니다. 아마도 신부님께서 처음으로 받으신 호사였겠지만 그것은 주님께서 신부님이 어떤 분이셨는가를 보여주시면서 생전의 청빈을 풍요로움으로 갚아 주신 것 같읍니다. 또 새벽까지 억수같이 비가 쏟아질 때 『신부님께서 착하셨고 남에게 괴로움을 주지 않는 분이시니 장례 때는 비가 그칠 것』이라던 분들의 말대로 아침부터 비가 그쳤을 뿐 아니라 서늘한 바람과 그늘 속에 장례를 편히 모셨습니다. 아버지! 제가 감히 아버지 영전에 이런 말씀을 드림은 아버지께서 1950년 합덕에서 사목 생활의 첫발을 디디실 때부터 제가 신부가 될 때까지 11년간 본당신부님으로 모셨고 저의 사제 생활 19년 동안 같은 교구에서 신부님을 모시면서 아버지께서 어떤분이시고 어떤생활을 하셨는지 잘 알기 때문입니다.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많은 성직자와 신자들의 師表이시기도 하셨지만 10명의 아들 신부와 수십 명의 딸 수녀들에게 세심한 배려와 크신 사랑으로 많은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
저희들은 훌륭한 사제요 스승님을 아버지로 모심을 영광스럽게 생각하면서 그 사랑 그 교훈 그 모범을 따라 아버지의 유지 (有志)대로 성직과 수도의 길을 충실히 따르기를 마음 다짐하옵니다.
그 하나로 아버지께서 그토록 힘쓰시던 성소 계발을 위해 당신의 못난 아들들이 「바오로성소계발 장학회」를 마련했습니다. 비록 작은 것이나 이를 통해 아버지를 닮은 사제가 하나라도 더 탄생되기를 바라면서 드리오니 기쁘게 받아주십시오.
『신부님은 결코 저희들 떠나신 것이 아닙니다. 신부님의 정신과 성덕, 신부님의 믿음과 사랑, 신부님의 골고다 외골길을 사시면서 심어 주신 그 사제상은 우리 교구 성직자, 수도자 신자들 그리고 아들딸들의 가슴에 깊이 새겨져 있고 온갖 죄악과 불의와 싸워서 이긴 영혼의 개선 우리교회의 승리요 영원한 기억』이라고 말입니다 천국의 영생이 그리워 당신 영명축일에 그리 빨리 가신 신부님! 이제는 주안에 평안히 쉬십시오.
주여 사제 박 바오로의 영혼에게 길이 평안함을 주소서. 아멘.
1980년 7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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