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활동을 하다 보면 대부를 서 달라는 부탁을 자주 받게 된다.
비록 혁신적 관계라 하더라도 아들 많은 것이 나쁠 게 없다는 생각에서 처음에는 모두 들어주었으나 요즘은 되도록 사양하고 있다.
말하자면 대자 가족계획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 이유는 적어도 대부라면 일생을 통해 대자의 영신 생활에 도움을 주고 상담역이 되며 지도하는 입장이 되어야 할 텐데 숫자가 많아지다 보니 그러한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기 때문이다, 내게는 대자가 19명이나 있다. 회사원 4명 학생 3명 미취학 어린이 4명에다 회사 상무 사환 운전사 선원 교도관 군인이 각각 1명씩. 그리고 2명은 소식이 끊겼다. 내가 처음 대부를 날것은 10년 전쯤으로 기억된다. 당시 직장에 다니던 아내가 회사 동료 직원들에게 전교를 해명동 성당에서 세례를 받게 됐다며 대부를 서 달라기에 응했다.
그때 나를 고민케 한 것은 대자 3명중 2명이 나보다 나이가 많다는 것이었다. 생각다 못해 신부님께 여쭈어 보았더니 바람직한 일은 아니지만 서도 괜찮다고 말씀하셔서 출발부터 나이 많은 대자를 모시는 입장이 됐다. 그러나 평소 잘 아는 사이인데다 (그들이 교리 공부를 하러 다니는 동안 자주 어울려 대포를 마셨다) 서로가 예의들 지키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거북스러운 일은 별로 없다.
나와 같은 사무실에 근무하는 스테파노는 부모님을 모두 여의었다. 재작년 어머니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셨고 아버지는 작년에 간암으로 운명하셨다.
부모님 밑에서 응석이나 부리며 자랄 나이에 고아가 된 것도 서러운데 스테파노에게는 사환 봉급으로 어린 동생을 4명이나 부양해야 하는 무거운 짐이 지워져 보기에도 딱하다. 스테파노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명동성당 교리반에 나가 열심히 배우더니 나더러 대부를 서 달라고 청해 왔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버지가 살아 계셨기 때문에 큰 부담을 갖지 않고 그의 청에 응했는데 막상 아버지마저 떠나시고 나니 내 책임이 그만큼 무거워졌다고 느껴졌으며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다행히 성당에 다니는 여러 은인들이 마음을 써 주고 직장에서도 물질적으로 정신적으로 도움을 베푸는 분이 많아 스테파노는 생각했던 것 보다는 덜 어렵게 생활해 나가고 있다. 좋은 뜻을 지니고 올바르게 살아가면 이세 상은 그렇게 메마르지 않고 또 하느님은 그런 사람을 버리지 않으신다는 것을 스테파노는 절실히 깨닫고 있는 것 같다.
올해 방송통신고교도 졸업했고 징병검사에서도 현역병이나 방위소집을 받지 않도록 판정을 받았으니 스테파노에겐 모든 일이 순조롭게 풀려 나가고 있는 중이다.
대학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한 아우구스띠노는 공군 장교로 입대해 대구 기지에서 복무하고 있다. 서울에 오면 반드시 찾아오거나 전화를 걸어 그동안 지낸 얘기를 들려주고 간다. 부대 안에서도 활동을 게을리 하지 않아 동료 몇 사람을 교회에 나오도록 인도했다는 말을 듣고 속으로 퍽 기뻤다.
주일이면 엄마를 따라왔다가 『대부님 안녕!』하고 깍듯이 인사하는 엠마뉘엘. 학교에 들어간 다음부터 날로 의젓해지는 라파엘, 학생회 활동을 열심히 하더니 회장이 된 이냐시오. 교도소에서 재소자들을 위해 헌신적으로 봉사하는 헨리고…모두가 믿음직스러운 나의 대자들이다. 그런데 안 그레고리오와 한 스테파노는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이 해가 가기 전에 대자 총회라도 열어 그동안 밀렸던 얘기들을 나누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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