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시30분.
몸은 누운채 머리만 들어 시계를 보니 마음속으로 정해둔 시간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쉽게 일어나지지는 않았다. 말로만 들어온 뒷산 약수리를 가볼양으로 어젯밤 단단히 마음을 먹었는데도 가볍게 일어날 수 없어 눈을 딱감고 일어나 산에 올랐다. 이른새벽이 었지만 이미 어둠은 볼 수 없었고 간간이 산엘 오르는 사람들이 첫새벽의 오솔길을 깨우고 있었다.
『잘왔군』
나는 미진한 잠을 떨치고 빠져나온 자신을 대견하게 여기며 오늘이라고 약수터를 향해 뒷산을 오느게 된 행운(?)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했다.
별로 높지도 않은 산에는 절정(絶頂)의 탄력으로 검푸른 제잎들을 거느리고 누구도 맞설수 없는 탄탄한 힘을 지닌 갖가지 나무들이 자신있게, 또한 도도하게 보이기도했다.
공기는 맑고 신선했다.
나는 굶주린 사람처럼 게걸스럽게 큰호흡으로 공기를 들이 마시며 내안에 잠재한 탁한 것들을 뱉어내려했다.
설령 몇번의 긴 호흡으로 내안에 끼인 먼지를 씻어낼 수 없다 하더라도 순간 나는 정갈하고도 청결한 영혼이 된 기분이 되어 약수터를 오른다.
어느새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었다. 수건을 목에 건 아저씨, 주전자를 든 할머니 할아버지 또 젊은이들!
그들은 서로 인사를 나누기도 하였다. 아마도 오랫동안 바로 이 시간에 이사 람들은 이 산을 오르며 아침인사를 나누어온 사이인것 같았다.
『좀더 빨리 왔어야 할것을 』
나는 아까운 것을 향해 올랐다.
잠이란 그 꼬리가 더욱 맛난 것이어서 긴장의 꼬리를 물고 잠자리를 뜨지못하고 새벽녘의 그 잠맛을 늘어지게 즐겨왔었지만 오늘 새벽의 뒷산 오솔길은 그러한 타성(惰性)을 통쾌하게 벗어나게 해주는 질좋은 감격을 안겨주고있다. 약수터에는 이미 많은 사람이 다녀간 흔적이 보이고 한 모금의 약수를 마시기 위해 몇사람이 줄을 서고 있었다.
약수터 주변에 있는 두어개의 철봉대 위에 젊은이들이 매달려있는 모습은 건강해보였다.
나는 두 손을 모아 약수를 받아 마셨다。
한번 두번 세번-.
공복(空腹)을 타고 내리는 차디찬 약수물이 상쾌했다.
손수건을 가져가지 않아 젖은 두손을 치맛자락에 닦으며 그 주변의 편편한 돌위에 앉았다.
한없이 마음이 고요해 왔다.
적어도 이 시간에는 눈가림으로 살아가려 했던 내 추악한 속성(俗性)을 단호히 중절(中絶)할수있는 이성(理性)에게 나는 지고말것같다.
나는 얼마나 허덕이며 살았는가. 눈부신 방황으로 스스로를 초라하게 만들고 강렬한 허욕(虛慂)으로 굶주려 허기찬 모습은 차라리 비천(卑賤)했다. 안간힘을 써서 만류하는 이성(理性)도 내 안에선 왕성했건만도 그보다 거대 (巨大)하게 행동하는 감정은 여지없이 나의 이성(理性)을 꺾어 무너뜨렸었다.
나는 가파른 언덕을 오르듯 돌위에 앉아 힘겹게 숨을 몰아쉬었다.
그리고 가차없이 나의 감정을 조롱하였다.
나를 이길수있는 시간, 결코 감정따위로 마음을 조아리며 어깨를 굽히지 않아도 되는 이 시간에, 한치의 머뭇거림 없이 나를 이길 수 있는 바로 이런 시간에 나는 나를 사랑으로 힐난한다.
나의 소망은 언제나 나의 손이 닿지않는 안타까운 거리에 있었음에도 체념하지 않고 간절하게 그것을 향해 몸을 돌렸다.
꿈이 아닌데 나는 발이 옮겨지지 않았고 팔의 길이가 짧아 지나가는 것을 잡지못했다 .
나는 정당하지 못했다。
때문에 나의 고독과 비애는 호소력이 은페되어 있다.
다만 스스로의 주먹으로 자기를 다스리며 달래야한다.
나는 요즘 거칠고 사나와졌었다.
천박한 욕설이 입안을 돌았다.
옛날 돌아가신 어머니가 당신 스스로를 자조(自嘲)하고 싶을때 당신을 향해 퍼붓던 육두문자(肉頭文字)
그 진저리치게도 듣기 싫던 욕설이 공감(共感)과 아울러 따뜻하게 느껴졌다. 실상 그정도는 나에겐 관대하다. 나는 나의 불합리한 소망을 이루기위해 얼마나 간교하게 요령을 피웠는가 .
그러면서 나는 많은 것을 잃어갔다. 주어지지 않은것을 무리하게 갖기위해서 내게 주어진 것들까지 잃어가고 있었다.
설사 그것이 사랑이라도 인간적인 선(線)을 뛰어넘을때 그것은 막대한 손해(損害)로 보상되어지곤 하였다.
나는 모호했다.
나는 무슨 소리로 흐렁흐렁 울어왔을까.
새벽산의 공기 때문일까.
비정하고 불투명한 나의 실체(實體)가 뚜렷하게 나타냈다가 사라지고 나타났다가 몇개로 조각이 나곤하였다.
비겁한 모습의 얼굴도 있었다. 나는 큰 동작으로 머리를 한번 흔들고 자리에서 일어나 오솔길을 따라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 시간에도 많은 사람이 올라오고 있었다.
모두 건강한 눈빛들이었다.
버릴줄도 알고 수정할 줄도 아는 사람은 건강하다.
감정보다 이성이 더강한 사람도 건강하다.
그래.
새벽잠을 떨치고 뒤산을 오르는 사람들, 그것을 하나의 기쁨으로 삼는 사람은 건강하다.
나는 걸음의 속도를 줄이며 산을 내려가는 시간을 아꼈다.
도중에 다시 풀섶에 주저앉았다.
거칠고 사나운 풀들은 성이나 있었다.
무심히 뜯은 풀잎하나에 손가락이 베여 따가왔다.
보잘것 없는 풀잎하나에 손을 베이고 돌아오면서 의도적으로 그런 의미를 캐는것을 나는 거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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