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문 앞에서 옷깃을 스치는듯한 소음이 우리들의 말초신경을 자극시켰다. 순간 마산경찰서의 강력반 양정오 형사가 거대한 몸집을 드러내고 히죽이 웃었다. 뒤어어서 부산시경의 사복경관들이 줄을이어 뛰어들었다.
『오셨군요. 아직은 할일이 남았는데,하지만 할수없죠』
난 소매속에 감추어둔 극야이 들어있는 약병의 뚜껑을 제끼고 번개처럼 입으로 가져갔다. 그와같은순간,양 정오의 거대한몸집이 바람소리를 내었다.
『어리석은짓은 하지말아. 다행히 피해자들은 한사람도 죽지않았어. 다만 상처들만 입었을 뿐이다』
『알고있습니다. 그러니까 할일이남았다는 것 아닙니까? 할수없죠. 미완성 작품의뒷맛을 음미하는수밖에…숙이!』
난 말없이 두손을 내어밀었다. 쇠불이의 싸늘한 촉감이 나의팔뚝을 압박해왔다. 마산경찰서에 연행된지 두시간만에 부산으로 압송되고 긴급구속영장에의해구속,기소되었다. 12월16일,제일심공판이 시작되었다. 40여분에 걸쳐서 심문이 끝나고 검사구형이 내려졌다. 검사구형15년. 15년의구형이 내려지자 나의 마음은 한없는비감에 오열하고있었다. 끝으로 할말이없는냐는 판사의목소리가 가늘게 나의귓전을 스쳐가고있었다.
『아무말도 할말이없습니다. 다만 더러운세상 보지않게 된 것이 고마울뿐입니다. 감사합니다』
부산지방법원 제1호법정 형사합의부에서 난 그날법정최고의구형을 받았다. 다시 양팔과 손목을묶이우고 허리마저 포승으로 졸리운채 출정버스에 올랐다. 누군가가 내가앉은 좌석의차창을 두드리고 교도관에게 밀려나간다.
『아니! 엄마가…』
십여년전,아버지가 돌아가신지 일년이 채 못되어재혼해 갔던 그 비정한 어머니가 십여성상의 연륜이 흐른오늘 그 자식의 비운을 통감하며 몸부림치고 있었다. 난 눈을 감아버렸다. 십여성상의 연륜을 헤아리는 동안 그톡록 저주하선 어머니였으나 지금 비통에 몸부림치는 그 모습을 차마 주시할수 없었기 때문이다. 레인코우트를 걸쳐입고 우산을 받쳐든 접견 연출담당이 나를 불러 내었다. 철망과 유리창을 사이에둔 접견실 저쪽에는 어머니의 근심어린 얼굴이 나를 지켜본다.
『규야!』
『돌아가시오. 여긴 무엇하러 왔지요? 난 당신 같은 어머니를 모신적이 없습니다. 어서 가시오』
『오냐,가마,가야지,하지만 꼭 한마디만…순이가 왔다갔다. 경순이가…』
『경순이가! 하지만 다 소용없는일. 십년이 넘도록 보고싶어 애를 태웠지만이젠 그들과의 인연도다끝났습니다. 그 불쌍한 것을 이런꼴로 어떻게 대하냔말입니다』
『그래 그게다 내탓이다. 내탓. 내가 들어서 너희들 다 죽이는구나』
『가십시요. 이제 할얘기 다했으면 가 보세요』
『오냐, 가마 몸조심해라…』
비정했던 그 어머니에비정한 자식. 하지만 인륜의정은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강인해 지려고,비정해지려고 이를 악무는나의두눈에서는 어느사이엔 가눈물방울이 시야를 가리고 있었다. 십여성상의 연륜을 헤아리며 그리움으로 응고된 가슴팍은 그들의 소식을 들음으로써 훈풍에 눈이녹듯이 흘러내렸으나 붉은계곡의 심오척높은벼랑은 뚫을수가없었다. 오로지 그들에게 신의가호가있기만을 기원하며 붉은계곡속의 파랑새가된 슬픈운명을 저주했다. 그토록 가슴아픈 괴로움속에서도 선고일정은 어김없이 다가왔다.
『피고인 이창규의 살인미수 등에 대하여 판결선고를한다. 피고인 이창규에게 징역 5년을 선고한다.
구금일수중 65일을 위본인에게 산입한다. 불복이있으면 7일내에 항소하시오』
하늘을 날고싶은 감정,대지를 향해 부르짖고싶은 충동을 억제하며 다시 열흘이 지나갔다. 검사로부터 함소제기 통보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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