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사 17방에 전방된 이 송자들은 그 방에서 하룻밤들 지새우고 새벽 열차편으로 호송될 계획이었다. 취침나팔이 울리고 주위는 깊이 잠들었으나 그들은 저마다의 사념에 사로잡힌 채 눈들만 껌벅이고 있었다. 먼동이 틀 무렵, 새끼줄에 굴비가 엮이 우듯 줄줄이 포승에 엮이우고 교도관들의 호위 속에 부산역 흠으로 끌려 들어가는 모습은 영화 속에서나 보아 오던 패잔병 포로들의 처절한 모습, 바로 그것이었다. 열차는 거대한 체구를 흔들거리며 미끄러지듯 레일 위를 달리고 있었다. 뽀얗게 입김이 서려 있는 차창밖엔 이름 모를 곳들의 가로등이 스쳐 가고 다시 그 위에 어린 시절의 경순과 계속이 울며 지나간다. 마지막 여인 영숙이 울며 몸부림친다. 난 무엇인가 못 볼것을 보았다는 듯이 획하니 얼굴을 돌려버렸다.
「경순아, 그리고 계숙아 !부디 행복하게 살아야 돼 내 원수 또 너희들의 원수는 내가 갚아주마. 여기 불행해진 이오 라비의 몫까지 너희들만은 꼭 행복해야 하는거야. 영숙이! 미안해. 길지 않은 동안이나마 즐거웠어. 그것이 아마 행복이었는지도 몰라. 당신의 사람 속에 흡수되어 나 또한 당신을 사랑했는데…하지만 어쩔 수 없었어. 참을 수가 없었어. 가혹한운명이이렇게 우리들을 갈라놓았네. 이제 당신과도 이것 이영 원한 이별이 되겠지 ?잘가. 그리고 행복하게 사는 거야」
어느 결에 열차는 동대구에 도착했다. 역 광장에 쭈그리고 앉은 우리들은 모처럼의 햇벼를 등으로 받으며 대구 교도소로 부터의 호송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지나가던 행인들은 으레 걸음들을 멈추었고 수인들의 찌들어진 얼 굴속에서 무엇을 찾으러는 듯이 유심히 바라보다 지나갔다. 미결 제2사 10방. 실내는 잘 정돈되어 있었고 사형수 김수 용이 수갑 찬 손으로 성서와 찬송가를 앞에 놓고 조용히 주시하고 있었다.
『수고하십니다.』
『추운데 먼 길 온다고 수고했소. 어디서 왔습니까.』
『부산서 왔습니다.』
『배식은 오늘 오신 분에게 방에 있는 사람들 소개 시키고 인사시켜.』
사형수 김수용의 지시에 따라 배식 당번은 차례로 선인 수인들을 소개했다. 서로들 간의 통성명이 끝나자 실장인 사형수 김수용이 나를 불렀다.
『반갑습니다. 우리들은 이미 세속에서 죄를 지었고 죗값 치루고 있는 사람들, 비록 세속에서는 죄를 지었더라도 적어도 곳에서만은 이순 간만이라도 죄를 짓지 않겠다는 마음가짐 이필 요하겠지요? 다른 사람들은 재판이 끝나면 거의가 나갈 사람들이지만 이형이 제일 고생을 많이 하겠군요. 헤어지는 날까지 우리 돕고 의지합시다.』
『갑사 합니다. 성서를 읽고 계신다니까 마음이 든든합니다.』
『내 생활은 취침 시간과 특별한 시간을 제외하고는 성서와 찬송가로 시간을 보냅니다. 그런데 이선생이 성경에 흥미가 많은 것을 보니까 혹시 신앙생활을 하십니까?』
『아닙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 사람을 죽이려고 하겠습니까? 다만 흥미를 가지고 몇 번인가 성당에 나가본 것이 고작이죠.』
『나는 사회에서는 성서를 몰랐소. 부산에서 최고형을 선고받고 충무동 장로교회의 김장을 목사에게 전도되어 세례를 받았지요. 예전에 성경을 알지 못했던 것이 서러웠습니다. 하지만 이제나마 성경을 알게 된 것이 천만다행으로 여겨집니다. 난 이 성경 속에서 많은 위안을 얻고 최고수로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마저 얻었으며 마음의 평화를 얻고 있습니다.』사형수 김수용과의 짧은 대화 속에서 난 몇 년을 두고 온 친구처럼 친근감을 느끼고 있었다. 곁에서 우리들의 얘기를 듣고 있던 배○○이 말을 건너왔다.
『이형께선 영세 받으셨는지요?』
『글쎄요. 배영께서는?』
『난 대건고등학교를 나왔습니다. 덕분에 천주교회를 조금은 알고 있습니다. 흥미는 있었지만 교리는 배우지 못했습니다.』
『그랬었군요.』
『옆방의 최고수 배○○씨도 천주교 신자라더군요. 아주 열성인 모양입니다』
배○○,그는 무척이나 해박 한사람이었다. 대구 로이 송된 지 열흘이지 난 오후 교무과의 직원으로부터 서신과 소포물이 배달되었다. 연숙으로부터의 서신과 함께 성서와 묵주를 비롯한 여러 가지 필수품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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