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게 있어서 죽을 은 최후 최대의 고통이다 사랑의 일생이란 곧 죽음으로 향한 긴 여정이라고 할수있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벌써 이 죽음이란 종착점을 향해 한발 한발 다가가고 있는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애써 이러한 사실을 의식적으로 생각치 않으려 애쓴다.
그것은 죽음이 그만큼 우리에겐 두렵고 외롭고 또 고통스런 순간이기 때문일것이다
▲인생의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죽음은 대부분 노쇠와 병고의 결과로 닥쳐온다.그러나 이러한 평범한 죽음이 아닌 비범한 죽음의 길을 택하는 사람도 적지않다. 이웃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치는 殺身成仁의 죽음이나 조국과 겨레를 위해 젊음을 초개같이 버리는 숭고한 죽음도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믿음을 위해 즉 「말씀」을 증거하기위해 스스로 죽음의 길을 택했던 수많은 순교자들의 거룩한 최후도있었다.
▲만약 죽음 그자체가 그처럼 두렵고 고통스런것이 아니라면 이들 순교자들이나 선열들의 행적을 우리가 특히 추앙할 이유를 찾기 힘들 것이다.이들 선영들이나 순교자들은 자신들에겐 절대적 가치가 있다고 믿었던 이웃사랑이나 조국애 또는 신앙 바로 그것을 위해 그 고통스런 죽음에의 길을 택했던 이들이다. 우리가 이들의 값진 죽음을 기회있을 때마다 되새겨보는것도 자칫 李珥와 排他로 기울기 쉬운 人間的 俗性에서 벗어나 기위한 노력의 하나로 봐야할 것이다.
▲우리의 초대교회순교자들으니 사자의 공격 앞에서도 두려움을 보이지않았다.또한 한국의 순교선열들은 망나니의 칼날 아래서도 웃으며 죽어갔다. 신앙을 포기하겠다는 한마디 말로써 이들은 죽음을 면하는 것은 물론 立身揚名까지도 가능했다. 그러나 우리의 선열들은 태연히 참혹한 죽음의 길을 택했던것이다. 이들의 값진 죽음이 있었기에 우리교회는 2천년이란 긴 세월을 통해 면면이 이어져왔고 한국교회는 오늘날 2백년의 알찬수확을 눈앞에 둘 수 있지 않았을까?
▲너무나도 상식적인 얘기지만 신앙에의 길은 곧 자아포기의 길이다. 자신을 죽이지않고는 진정한 사랑의 실천은 어렵다. 우리의 선조들은 스스로 목숨까지 바쳐가며 신앙을 증거했다.그러나 오늘날 우리의 신앙자세는과연 어떠한가. 목숨은 고사하고 자신의 감정마저도 제대로 죽이지 못하면서 순교정신이 나 사랑을 운위할수있을까.
모든 인간적 증오나 불화를 버리고 허심탄회한 自我포기없이 순교정신을 默想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일이다.이 福者聖月에 순교정신에 대한보다 깊은 이해와 이를 생활화하려는 노력이 아쉽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