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잘아는 미국신부님이 계셨다. 그분은 어머님 임종시에 병자성자를 베풀어주셔서 선종케하셨을 뿐아니라 겨울에도 맨발로 다니시는 엄격한 수도신부님이셨기에 깊이 존경하였고 그분 또한 나를 퍽 아껴주신다고 여겨왔다. 그런데 몇 년 전 시골에서 새를 기르며 고독을 벗 삼아 홀로 지내신다는 얘기를 듣고 한번 찾아뵙고 좋은 말씀도 듣고 인사도 드릴 겸하여 선물을 준비해가지고 찾아갔다. 그런데 마침 출타중이셨다. 기다리기가 지루해서 마당을 둘러보니 고물 오토바이가 고장이 난듯 쳐박혀있었다. 그래서 몇군데 정성들여 손질을해 시운전끝에 최상의 상태로 만들어 놓았다.
비록 내손은 시커멓게 되었지만 좋은 일하나 해드렸다싶어『댕큐!』하며 칭찬해주실 신부님을 생각하면서 흐뭇해하고 있는데 마침 신부님이 들어 오시는 것이었다.
반가워하시면서 악수를 청하시기를 나의 시커먼 손을 보여드리면서『오토바이 고치느라 그렇게 되었다』고 자랑스럽게 말씀을 드렸다. 그 순간 그분의 표정이 일그러지면서『나는 다른 사람이 내 오토바이 만지는것 안좋아합니다』하시면서 몹시 언짢아하셨다. 나는 가져온 선물도 못드리고 뭘 수록하게 서있을 수밖에 없었다. 미안하기도 했지만 「나는 그분과는 멀리 떨어져있는사람이 로구나」하고 오히려 서운한 맘이 더들었다. 나중에 신부님도 미안해하시면서 미국사람들이 절대로 빌려주지 않을게 세 가지가 있는데「칫솔ㆍ부인ㆍ기계」라고 하시면서 농담겸 당신네 생활방식을 얘기해주셨다. 나는 그때 그분의 감정을 얼마 전까지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약간 실수했다손 치더라도 가까운 사이라면 성의를 보아 좀 너그럽게 대해주실수도 있는데 말이다. 그런데 늦게나마 그분의 심정을 비슷하게 이해할 수 있는 일이 나에게도 생겼다. 평소 나를 잘 따르던 청년이 있는데 그가 가끔 나를 칭찬해주기 때문에 나는 그에겐 늘 약하다. 그가『신부님은 참너그럽고 인자한분이세요』할 때『아이구먼』하면서도 내심 즐거워하곤 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청년이 내가 애지중지하는 카메라를 좀 빌려달라는 것이었다. 난 이날 딱 부러지게 거절을 못하고 그만 빌려주고 말았다.
그리고 난 다음「망가뜨리면 어떡하나, 혹시 잃어버리면 어떡하나」퍽불안해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기어코 고장을 내오고야말았다. 나는 순간 굉장히 불쾌했지만 화를 내거나 언짢은 모습을 보일수가 없었다. 왜냐? 옛날생각이 번뜩 떠올랐을 뿐아니라, 바로 그가 날보고 늘『너그러운 신부님』이라고 말해 왔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침을 꿀꺽삼키고 이렇게 말했다.
『어, 이거 뭐 그리 대단한 건가, 괜찮아요 이다음에 혹시 또 필요하면 서슴없이 얘기해요』사실속은 쓰리면서도 겉으로는 빌려주는 것을 기쁨으로 아는 사람처럼,아니 물질적인 것을 초월한 성인군자처럼 말했다. 그랬더니 그 친구『예, 신부님 그렇게 하지요』하는것이 아닌가. 「예끼, 이염치 없는 사람아. 아니 그렇게눈치코치도 없니」하는 말이 목구멍까지 와 닿는걸. 침을 한 번 더 꿀꺽 삼켜 참았다. 미운 맘까지 들었으나 내색을 하지 않으려니 더욱 힘들고 짜증스러웠다. 그가 가고난 다음 내 속상한 맘을 아무 영문도 모르는 주방언니한테 반찬트집을 잡아 확풀어버렸다. 며칠 후 주방언니말이 『밖에서는 아주 인자하시고 좋으시다는 신부님이 안에선 왜 그렇게 짜증을 부리시는지 알수없다』고했다. 난 그말을 듣고 이렇게 중얼거렸다. 『넌, 이해해줄 수 있는 가까운 사이 아니니』하고 말이다. 그래놓곤 뭔가 느껴오는 것이 있었다. 「오라! 감정을 그대로 노출시킬 수 있는 사이란 신뢰할 수 있는 가까운 사이로구나. 그러나 듣는 이는 괴롭구나.」라고 느끼는순간 그 미국 신부님이 스쳐지나갔다. 「그리고 난 진짜 너그러운 사람이 아니고 그렇게 보였을 뿐이구나?」그러니 보이기 위한 삶, 실속없이 겉치레만을 위해 살아가는 이들은 그 자신 얼마나 힘들며 그와 더불어 일생을 살아가는 이는 또한 얼마나 더 괴로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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