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바티깐」공의회 이후 토착화라는 말이 유행어처럼 쓰여지고있다. 전례의 토착화라는 外的인面에서 서서히 일기 시작한 이 토착화의 기운은 최근신자들의 意識構造의 토착화라는 內的인 面으로까지 진전되고있다. 공의회 이전까지만해도 신자들은 거의 대부분 알아듣지도 못했던 라띤어 미사에「참석」했을뿐이었던. ▲모두가 이해하는 우리말로 신자 전원이 사제를 중심으로 함께 미사를 봉헌하는 지금으로서는 당시를 생각하면 실로 隔世之感을 아니느낄수없다. 특히 요즈음은 각계각층의 뜻있는 인사들이 토착화에 깊은 관심을 보이고있음은 실로 다행한 일이라 하겠다. 실로 이러한 움직임은 비록 아직도 힘겨운 시도이긴하지만 우리의 성가를 만들어 보겠다는 노력이 하나하나 열매를 거두어가고 있는데서도 찾아볼수있다. 성가라면 아예 서구에서 불려지는 노래이어야만 하는것으로 생각해온 우리로서는 그것이 비록 약간의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한국인이 만든 한국적 가락에 우선 마음이 끌린다. ▲특히 우리를 당혹하게까지하는것은 상본의 과감한 토착화 시도이다 우리의 머릿속에 박힌 예수님의 모습은 텁수룩한 장발에 우뚝솟은 코, 그리고 당시 유대인들의 복장을한 전형적인 서양사람이다. 성모마리아 역시 파란눈매를 가진 서양의 여성상그대로를 아무런 저향감 없이 받아들여 왔다. 그런데 도포에 갓을 쓴 예수, 치마저고리에 비녀를 꽂은 성모마리아, 거기다 예쁜 한복차림의 아기예수상본까지 등장하고있다. 이러한 획기적인 성화는 文化的인 면에서의 토착화의 시도라고도 볼수있을것 같다. ▲이처럼 토착화의 움직임이 활발히 일고있지만 아직도 아쉬운점이 적지않다. 그 가운데서도 주목할 만한것은 우리의 의식구조속에 잠재된 祖上 숭배방법에 대한 연구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한국인의 의식구조에는 돌아가신 부모에 대한 추모의 정이 남다른데가 있다. 가을의 풍성한 수확을 거두면 돌아가신 부모님을 생각한다. 또 생시에 부모님이 좋아하시던 음식을 접해도 문득 亡者를 생각한다. 이것은 우리민족이 갖고있는 아름다운 孝心으로 평가해야할것이다. ▲이제 추석이 눈앞에 다가왔다. 매년 명절이면 위령미사를 드리고 조상의 명복을 비는것은 관례로 되어있다. 이와함께 온가족이 모여 연도를 드린다. 그러나 우리 마음 한구석엔 어딘가 허전함을 느끼는것이 숨길수없는 사실이다. 이는 아마 생전에 좋아하시던 명절음식을 한번쯤 조상에게 보이고싶은 인간적인 욕심때문일것이다 아무런 죄책감없이 연도상에 간소한 음식을 차리도록하는 연도의 토착화도 이제 한번쯤 생각해 봄직도 하지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