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후기 사회적 개혁의 의지는 남인소장학자들의 실학연구에서 볼수있다. 이는 우리겨레의 근대화를 지향한 의지의 표현으로서 민족의 자각을 향한 전환의 한역사적 과정이라 할수있을것이다. 그무렵 진리탐구에 불타는 젊은이들이 천진암 주어사에서 강학회를 열고 서학의 우수성을 연구 토론 하더니 1784년 마침내 부경사행의 길을 따라 북경에서 이승훈이 베드로라는 영명으로 성세성사를 받고 입국, 이벽ㆍ권일신등과 함께 서울 명래동 김범우의 집에서 정기집회를 갖고 천주교신앙의 실천운동을 벌이기에 이르니 이것이 한국교회 창립의 효시가되었다.
대체로 모든 종교의 전파과정은 포교사명을 띤 선교사들의 포표활동에의해 신앙이 전해지는 것이 일반적 추세인 것이다. 그러나 한국천주교회의 경우는 단한사람의 외국선교사의 포교활동도 없이 우리민족스스로 신앙을 개척하였으며 교회의 창립까지 보기에 이르렀는데 이는 세계교회사상에 그 유래가 없는 것으로 우리민족의 우수성과 자율성율 보여준 뚜렷한 또하나의 긍지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한국천주교회의 창립은 이렇게 우리겨레의 자랑으로 출발되었다. 그러나 한민족의 오랜 역사속에 형성된 생활양식과 사고방식 가치의식등의 깊은 내면에 가토리시즘이 그렇게 쉽게 수용, 정착될 수는 없었다. 이는 천주교라는 보편성과 한국이란 특수성의 조화의 문제뿐아니라 한민족의 역사적 자연적 생존이라는 자연성과 민족의 영원한 구원이라는 종교적 초자연성의 문제에서 초자연적 진리에 대한 현실적 증명이란 엄청난, 그러나 절실한 요구에 부딪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에는 기막히게도 그 어떤 이념적 논증이나 논리가 오히려 무색하다는 점이다. 실제로 우리는 진리가 자주 어떤 이론적 설명보다는 진리임을 깨닫게할 생생한 증거자를 더 필요로 함을 본다.
그래서 여기 한국천주교회의 순교사는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거룩한 삶과 죽음으로 진리를 증거한 사람들 그들은 바로 우리민족앞에 우리민족의 역사속에서, 우리민족을위한 구원의 진리를 영원히 깨우쳐주신 증인들인 것이다.
한국 초대교회의 1백년간 신유(1801년) 기해(1839년) 병오(1846년) 병인(1866년)의 전국적 및 허다한 지방적 규모의 박해속에서 우리의 순교선열들은 분명 이민족을 향항 구원의 목소리였으며 죽음을 초극한 진리의 증거자들이었다.그리고 오늘의 교회는 그 순교의 피위에 핀 꽃임을 결코 잊을수 없을것이다.
세기를 통해 끊어지지 않는 순교자들의 무리는 오직 가톨릭교회사에서만 볼수있는 하나의 뚜렷한 사실이다. 가톨릭교회의 진리와 그 초자연성을 모르고서는 가톨릭이 지니고 있는 이순교의 뜻을 알수가 없을것이며 또 그 어디에도 비교가 되지 않는 수많은 가톨릭 순교자들에 대한 바른이해없이 진정 가톨릭을 안다 할 수 없을 것이다. 실로 순교자들의 피가 간직한 신비를 바로 이해한다는 것은 참된 그리스도교의 진리를 이해한다는 것이며 그것은 또한 그리스도를 옳게 앎이 되는 것이기도 한다.
「순교」란 말의 어원이 「증거자」에있듯이 순교는 신앙의 진리에 대한 영웅적 증거인 것이다. 그래서 토마스아 퀴나스는 『진리가 아닌것에는 증거가 있을수 없고, 또 어떤 진리에 대해서든지 증거하는자를 모두 순교자라 하지않고 다만 하느님의 진리를 증거하는 자를 순교자라 한다』고하였다.
순교를 이렇게 신앙적 진리의 증거로볼떄 그것은 모든 그리스도교적 덕행의 절정이며 완성이 아닐수 없다.
또한 순교가 증거이기에 그것이 결과이기 보다는 원인이 되는 것이다.
아우구스띠노는 『벌이 순교자가 되게 하지않고 기인이 순교자되게한다』고했다. 즉 순교의 죽음은 신앙생활이나 신앙의 진리가 일으킨 갈등에 대한 벌로써가 아니라 신앙의 진리를 증거하려는 이유때문에 죽은것임을 바로 알아야하겠다.
우리가 순교정신을 생활화한다는 것은 바로 그순교의「원인」을 내 삶의 「원인」으로 한다는것이다. 인내하며 희생하고 봉사한다는 도식적 해명이나 생활이 죽음을 초극하는 그 원인에서 나오지않을 때 순교선열의 정신을 바로 계승하여 생활화한다고 할 수는없다.
우리는 자주 순교선열들의 피와 죽음을 하나의 감동적 교훈의 귀감으로 삼으면서도 그들의 거룩한 죽음과 우리의 초라한삶 그리고 그들의 극적 종말과 우리의 평범한 일상생활을 비교하는 감성적 태도에 빠지기 쉽지만 문제는 그들이 순교자가된 내적 「동인」이 과연 우리안에도 있는가를 냉엄히 성찰해야 하는데 있다. 그 불타는 영적동인에서 죽음도 선택할 자유를 누렸듯이 오늘우리가 누리며 내가 선택한 자유에는 저 간교한 윤리적 타락이 거스릴 수 없는 위력이 깃들어있는가! 최후의 방법이 북음처럼 최선의 방법인 삶이 또한 그리스도적 사랑의 불타는 동인때 문일 때 복음의 증인인 순교의 생활을 우리도 할수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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