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영숙의 사인을 알리는 편지한통을 내어 주었다.
한줄 또한줄을 읽어내리는 동안 쏟아져내리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그토록 당신을 사랑한다고, 그토록 사랑하는 사람의 회두를 갈망하던 그녀는 그사랑하는 사람의 사랑을 받아보지도 못한체 사랑하는 사람의 회두를 염원하며 한없는 세상을 떠나고 만것이다.
『2590번! 자네와 난 이제복의 간격만 없다면 가까워질수가 있을거야. 나도 고향이 경상도지. 마산이란 말일세. 그러기에 난자네에게 좀은 관심을 가지고 싶네』
『필요 없습니다. 전 이미 많은이들로부터 관심밖에 있었고 누구의 도움을 받으며 살지도 않았습니다. 앞으로도 그렇게 살겠지요. 그렇게 살다가 못살면 죽는것이고… 돌려보내 주십시오. 괴롭습니다』
『2590번! 인명은 제천이라고 했어. 마음은 괴롭겠지만 참고 이기는거야. 그리고 죽은사람의 염원대로 이제나마 마음을 다잡고 성실히 사는거야. 그것만이 망령을 위하는 길이아니겠나? 강제로 독거방에 근신을 시키지 않겠네. 사고내지말고 근신 잘하고있어』
난 아무말도 하지않았다. 누구에겐가 끌리다시피 하여 사방으로 돌아왔고 보이지않는 설음에겨워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천하일미라는 사등식을 삼일을 굶고 또 이틀을 굶었다. 천정이 돌아가고 또 내가 돌아간다 윤 교도관이 손수 죽그릇을 들고와 이마를 짚는다.
『90번! 죽이라도 좀먹고 정신을 차려야지. 마음은 괴롭지만 참고 견디는거야. 이젠 만기도 얼마남지 않았는데…』
『감사합니다. 하지만 생각이 없습니다. 난 죄인입니다. 죄를 지었으니 죄값을 치루고 죽어야죠』
며칠을 두고 계속된 장마로인해 감방에만 갇혀있던 미지정사의 수인들은 모처럼 화창한 날씨를 맞아 삼십분간의 운동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이형! 광주교도소에서 운동장을 맴돌며 정담을 나누는것도 오늘이 마지막이군요.』
『유수 같은 세월이라더니 벌써…』
『어떤면에서는 서글픈 나날들이었으나 이형에게서 교리도 배우고 책도 많이 읽었습니다. 정말 뜻있게 보냈습니다.』
『배형! 출감을 축하합니다. 대구에 돌아가시거든 성서와 교리연구 계속하시고 영세입교하셔서 우리들의 교제가 헛되지 않게 노력하시기 바랍니다. 언젠가 배형께서 얘기한 뿍맨박사의 일언처럼 대지를 품고 포부를 가지며 힘차게 살아보십시오. 멀리 붉은 계곡속에서나마 난 당신의 행운을 빌어들리테니까요』
『감사합니다. 하지만 이형께서도 이젠 원수를 향한 그 집념을 꺾도록 노력해 보십시오. 인생은 원래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당신의 강한 집념을 꺾기에는 많은 힘이 들겠지요? 하지만 당신의 강한 신념은 능히 그 고통을 제거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노력하지요. 이미 나의 뇌리속에 복수란 말은 잊은지가 오랩니다. 당신도 아시겠지만 사형수 김수용의 처절한 모습, 수많은 장기 수형자들의 설움에 겨운 눈망울들이 내마음을 흔들어 놓은 것입니다. 당신이 출감을 하니까 나도 얼마남지 않은 것 같은데 만기일자가 다가오는 것이 나는 오히려 두렵습니다. 더는 슬픔을 씹지않으려고 마음을 도사렸으나 또 어떤일이 벌어질지… 부모와 형제들이 기다리고있는 당신과는 다르니까….』
『대신 이형에겐 지옥끝까지라도 따르겠다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지 않습니까?』
『글쎄요. 그와 작별을 한지 삼년. 그는 이미 이세상의 사람이 아닙니다. 벌써 한달전에 타게했습니다. 심장병으로… 난 그녀에게 죄인이 된셈이죠. 그사람의 유해나마 내손으로 묻어줬어야하는건데…』
배XX를 출감시킨 세월은 나혼자만버려두지는 않았다. 운동장구석에 의롭게 서있는 프라타너스의 야윈 가지에 부드러운 잎눈이 맺히는가 했더니 다시 검푸른 녹음에 뒤덮였다. 교무주임 노목사로부터 불리움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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