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규씨! 그동안 수고많았어요. 이제 3일후면 출감하게 될텐데… 이미 굳은 각오가 서있을줄 알지만 나 한번쯤 충고해 두고싶네. 직원과 수용자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인간과 인간의 입장에서 얘기하는것이네. 한마디로 말해서 복수의 집념을 버리는거야. 하나의 목표를 향해 돌입하는 그강한 집념은 나도깊이 사고싶은바이네. 하지만 이창규씨의 그강한 집념은 방향이 빗나가고 말았어. 그 빗나간 방향을 바로 잡아주게. 그것이 바로 자네가 사랑하고 아끼던 여인, 그연인의 망령에게 사죄하는 길이며 또한 본인 이창규씨가 살수있는길이 아닐까 생각하네』
『감사합니다. 앞으로 저의 운명이 어떻게 펼쳐질는지 모르긴 합니다만 목사님의 말씀이 헛되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리고 한가지만 더 얘기하겠네. 지금이라도 형수되시는 분이 화해를 청하고 용서를 빌어온다면 이창규씨는 어떻게 하겠나?』
『글쎄요.』
『그들은 이미 자네에게 용서를 빌어왔고 화해를 요청해왔네. 그들을 용서하게. 그것은 아마도 자네를 사랑하던 그 연인의 소원일지도모르네. 그여인의 소원을 들어주게. 이창규씨의 형수되시는 분에게서 내게 서신이 왔네. 자네의 출감과 아울러 집으로 보내달라고』
『목사님! 그런 말씀이라면 저는 돌아가겠습니다. 지도원을 시켜서 원예부에나 좀데려다 주십시오』
난 교무과를 물러나와 원예부의 박○○을 방문했다.
『박형!』
『오 이형! 이제 마지막이군요.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지금까지 우리 미지정예비신자들 교리지도해주신다고 수고 많았습니다. 출감하시더라도 이곳 불행한 곳의 형제들, 기억하시고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하고싶은 말들은 무척이나 많았습니다. 하지만 정작 대하고 본 할말을 잊었습니다. 건강 하십시오. 그리스도의 평화가 당신에게 일하시길 기도하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이형! 성공하십시오.』
사형수 김 수용이 그러했듯이 무기수 박○○도 젊음에 대한 미련, 더 넓은 세계에로의 동경은 어쩔수 없는것인가 보다. 작별로 고하는 그의 눈자위에는 이슬 같은 실구슬이 걸려 있었다.
X x x
이글거리는 태양의 무서운 폭광이 밤의 나래속에 기어들고 대양에서 불어오는 해풍이 부드럽게 스쳐간다 검은 장막의 베일을 뒤집어쓴 시가지엔 분장한 여인들의 악세서리마냥 휘황찬란한 오색불꽃들이 수를 놓고 있었다. 삼년 반만에 다시 걸어보는 밤거리, 난 이토록 몇시간을 배회하다 이미 망령이 되어버린 영숙의 숨결이 담겨져있을 판자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모든것이 변함이 없었으나 밤새워 밝혀놓던 희미한 불빛만은 새어나오지 않았다. 대문간을 들어서고 문간을 들여다 보았으나 방문은 굳게 잠겨져 있었고 다시 열리지 않았다. 난 큰소리로 건너편의 주인방을 향해 소리쳤다.
『실례합니다』
『예 누군기요?』
『저 할머니 안녕하십니까?』
『가만있자, 이양반이 누구더라? 이씨 아닝기요? 좀 들어오이소. 와 인자서왔능기요? 그래 그동안에 고상은 올매나 많이하고…? 그라지 안해도 새댁이 이씨가올 때 다되어간다고 그렇게도 기다려샀더니 만은!』
『할머니 면목이 없습니다. 하지만 어쩔수가 없었습니다』
『다 괜찮소. 산사람이야 고상좀해서 그렇지, 살지않것능기요. 이좋은 세상을 못다살고간 그사람이 불쌍하지…』
『할머니, 대체 어떻게 된겁니까? 속시원하게 말씀이나 좀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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