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잉깨내 이씨가 잡혀가고 이내 태기가 있었답니다. 기한이차서 애기를 낳는데 잘몬되어 가지고 애기는 그만… 까딱잘몬했으몬 산모까지 욕을볼뿐하다가 우째 회복이 되더마는 그만… 그랄라고 약한점 안사묵고 자나깨나 이씨생각만 하더마는… 하루저녁에는 날로안부르나. 그래서 급하게 가서 보니깨내 편지두개로 줌시로 한 개는 바로 부치고 한 개는 오건든 주라고하데. 그라고 아랫방에는 물건들이 그대로 있어서 내가 잠가놨소』
『할머니, 산소는?』
『색씨 유언대로 화장을 했입니더. 친정 어마시 손으로 무학산 꼭대기에서 뿌려주었답니더. 그높은데서 이씨가 출감해서 돌아오는 것을 보고싶다고, 이씨가 형님댁과 화해하는 것을 보고싶다고 해서 말입니더. 참, 나는 아랫방 소제나 좀해야되것네』
난 주인노파가 건네주는 영숙의 유언을 들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나를 저주하고싶은 생각이 머리를 쳐들고 나를 향한 분노가 솟구친다. 난 주인 노파의 인도를 받아 아랫방으로 건너갔다. 그녀의 손때가 묻은 화장대등이 나란히 정돈되어 있었고 그한족위엔 그녀의 사진첩이 나를 향해 웃고있었다.
영숙이! 내가 죽일놈이다. 당신의 말만 들었던들 이런비극은 없었겠지? 내가 당신에게 얻은 이죄를 어디 조금만 더 살아주었더라면. 숙이! 날 용서해 다오. 당신의 유언대로 이제나마 그복수의집념을 꺾고 참되고보람있게 살아가마. 당신은 영원히 내가슴속에 머물것이다. 영원히 꺼지지않는 사랑의 불꽃이되어 타오를것이다.
『이씨! 마음을 크게 굳게묵어야 됩니더. 그라고 부산에서 형수되시는분이 다녀갔입니더. 숙녀 한사람하고… 이씨가 오는대로 부산에 꼭좀다녀가라 캅디더』
『알겠습니다. 그런데 숙녀라니요?』
『와, 그것 안있는가요? 예배당에서 평상 시집안가고 혼자사는사람들말입니더』
『아, 예, 알겠습니다』
잠이오지않는다. 온밤을 뜬 눈으로 지새우며 숙의사진첩을안고 몸부림을 쳤다. 그때마다 숙은 내곁에서 속삭이고 있었다. 당신의 착한아내가 되겠노라고 속삭이며 다가온다.
『그만 그만해, 그만하란 말이다. 숙이! 내가 너무가혹했지? 당신에게 지은 이죄를 난 어디에서 누구에게 사죄를 해야한단말인가? 미안하다. 미안해. 정말당신은 가시밭의 백합이었고 진흙속의 연꽃이었어 지금도 네꽃의 향기는 나를 감싸고 있는데… 숙이! 당신 외롭지? 조금만 기다려. 내일 당신에게 다니러가마』
동녘하늘에 뿌옇게 먼동이 틀무렵, 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무학산을 오르기위함이다. 주인 노파는 새벽잠이 없는탓인지 이미 일어나 있었다.
『할머니, 부산좀 다녀오겠습니다』
『이렇게 일찍차가 있을라꼬?』
『산소에 다녔다가 곧장 부산으로 가겠어요』
『아니! 산소라니요』
『무학산에… 나를 기다리고있을 그사람이 의로울 것 같아서』
『이씨! 소용없오. 확장을 시켰는데 산소가 어데있오?』
『무학산 봉우리가 그사람의 산소 아닙니까?』
휘황한 아침 햇살이 무학산정을 비춰주고있었다. 철썩거리는 숨결을 몰아쉬며 어둠을 헤치고 달려갔으나 그곳엔 기다리는 사람도, 기다려야할 사람도 아무도없는 외롭고 호젓한곳. 계절과는 아랑곳없다는듯 싸늘한 바람만이 휑하니 불어오고 있었다. 외로움이 엄습하고 눈물이 쏟아진다.
『숙이! 당신이 기다리던 내가 당신을 찾아서 이렇게 왔는데 당신모습을 볼수가없으니… 외로왔지. 당신의 유해가 널려있는 이높은 봉우리를 난 이세상이 마름하는 그순간까지 지켜보겠네. 외롭더라도 잘있어. 내 다녀오마』
눈부시도록 작열하는 태양, 그 태양을 머리에 이고 세정을 굽어보는 성당의 육중한 십자가가 의로웁게 서있었다. 언덕위 동굴속에 높다랗게 안치된 동고상, 그주위를 아름모를 꽃들이 수를 놓고 있었다.
『오, 베-다씨!』
『수녀님, 수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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