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으로서 서울과 대구 양大敎區는 각기 교구설정 1백50주년과 70주년을 맞게 된다. 이 뜻깊은 해를 보람있게 맞기위해 이미 두 교구에서 각각 여러하지 기념사업을 계획 또는 추진중인것으로 알려졌다. 참으로 고무적인 소식이 아닐수없다.
교구는 교회행정제도의 근본으로서 지방교회의 存續과 발전을 보장하는 기반을 이룬다. 그러므로 한국교회가 창설된 47년만에 비로소 교구설정을 보게된 사실은 특별한 의의를 지니지 않을수없다. 한국교회사에서 조선교구가 설정된 1831년을 가장 획기적인 연대로 보는소이가 바로 여기에있다.
한국교회는 선교사의 宣敎를 거치지않고 평신도들 스스로의 힘으로 창설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미구에 그들의 新生敎會가 선교사 없이 존속될수 없음을 때달았다. 이리하여 성직자 迎入운동이 전개되었고 마침내 선교사 한분을 얻을수있었다. 그러나 박해로 그유일한 선교사를 잃게되니 성직자영입운동이 재개되지않을수 없었다. 이때 한국교회는 선교사의 영입 못지않게 선교사의 체류보장, 즉 종교자유의 획득이 시급함을 절감했고 그래서 선교사의 파견과 아울러 종교자유의 실현을 北京主敎와 교황에게 호소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한국신자들의 이와같은 가공적인 요청이 북경과 로마에서 받아들여 질리가 없었다. 북경교회는 항구적인 대책은 고사하고 선교사의 파견이란 일시적인 방법마저 해결하지못했다. 북경의 포르투갈系 선교사들은 淸國과 조선왕국간의 쇄국정책을 구실삼아 조선에 나가려하지 않았을뿐더러 포르투갈에 주어진 포교상의 보호권을 고집함으로써 다른나라의 선교사들의 파견마저 방해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마침내 포교성을 항구적인 대책으로서 조선교회를 북경교구에서 독립시켜 수도회나 外邦전교회에 위임하기로 하였다.
이리하여 파리외방전교회와의 교섭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외방전교회가 조선교회를 수락하기까지 3년이 걸렸고 외방전교회원의 조선입국이 실현되기까지는또 4년이 걸렸다. 어쨌든 외방전교회는 극히어려운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조선교회의 선교책임을 甘受하였고 한편 교황청은 외방전교회원의 자유로운 활동을 보장하기위해 일약 조선교를 북경교구에서 분리하여 독립된 교구로 창설해주었다. 휭재한 것은 한국신자들이었다.
한명의선교사도 과분하게 생각되었던 그들에게 한 선교사단체가 주어졌고 한명의 신부도 과분하게 생각되었던 그들에게 주교까지 주어졌기 때문이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에 직면하여 우리는 조선교구의 설정을 실현시킨 신앙선열들의 노고와 선교사들의 희생정신에새삼 깊은 감사의 정을 느끼지 않을수 없을것이다. 성직영입을 위한 북경길은 죽음의 길이나 다름없었고 한국땅에서 선교한다는것은 순교로 자진하는것이나 다를바 없었다.
진실한 감사에는 보답이 따라야 한다. 한국교회가 가장효과적으로 보답할수있는 길은 무엇일까? 여러가지길이 있겠지만 한국교회가 하루빨리 성숙하여 자립한는 것보다 더 나은 보답은 없을것이다. 모든 외방전교회의 목표는 한국인 성직자를 양성하여 가능한 조속히 그들에게 교구를 넘겨주는 것이다. 이러한 정신에서 한국의 외방전교회도 이미 일제시대에 전주교구를 대구교구에서 분할하여 한국인 성직자들에게 맡겼고 서울교구는 교구장직자체를 한국인 주교에게 맡기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아직 정식교구로 승격시키지는못했다.
그러던것이 마침내 1962년 한국에 敎階制度가 설립됨에 따라 모든 교구가 정식교구로 승격되었고 이로써 한국교회는 비로소 自立敎會의 면모를 갖추게되었다. 그후 한국교회내의 외방선교회의 탄생은 자립교회의 모습을 가장 드러낸 것이 라하겠다.
그것은 한국교회가 종래의 받기만 하던 교회에서 주는 교회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교회에은 이와같이 자립의 모습을 과시하는 사실들이 있는가하면 자립에 대해 의혹을 낳게한는 사실들도 적지않다.비근한예로 한국인 성작자들의 고유영역으로 생각되는 본당설립과 사목마저 아직 선교사들에게 적지않게 의존하고 있다는 엄연한사실앞에서 우리는 한국교회의 완전자립이 아직 요원한것이 아닌가하는 서글픈 생각마저 갖게된다. 완전자립이란 物的人的自立만이 아니라 고유한 문화를 창조할수있는 정신적 자립이어야한다. 이 정신적 자립이 이미 50년전 조선교구설정1백주년때 한국교회의 과제로 제기되었었다. 즉 한국신자에게 서구화를 강요해서는 안되고 오히려 그들로 하여금 한국적인 그리스도교 문화를 창조하게 해야한다는 것이었다.
한국교회가 정신적으로 자립한다면 그것은 한국교회를 키워준 선교사들에게 가장큰보답이 될것이고 동시에 세계교회에도 기여하는 길이 될것이다. 교구설정 1백50주년과 교회탄생 2백주년을 목전에 두고있는 우리에게 이보다 더큰 과제가 또 무엇이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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