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수수 낙엽이 떨어져가는 자연의 조락(凋落)앞에서 그 앙상함을 보는 계절이오 위령성월인 11월 하달동안 우리는 이미 세상을 떠나간 부모형제자매, 친척, 은인들과 아직 천국에 들지 못한 모든 연옥영혼들을 기억하며 그들을 돕고 대속하기 위하여 많은 기도와 희생을 바쳐왔을 뿐만 아니라 장차 우리에게도 다가올 죽음과 심판과 천당 지옥에 대하여도 곰곰이묵상해 왔다.
그러나 위는위령성월이 아니더라도 언제나 우리의 죽음과 죽은 모든이에 대하여 기도하며 통공의 신앙을 고백하고 있다.즉 미사때마다 성찬기도시 죽은이를 위해 기억하며 로사리오기도를 바칠 때도「예수여 우리죄를 용사하시며 우리늘 지옥불에서 구하시고 연옥영혼을 돌보시되 가장 버림받은 영혼을 돌보소서」라고 구원경을 염하며, 성모송을 염할때에도「...이제와 우리죽을때에 우리죄인을 위하여 빌으고서」라고 기도하며, 식사후에도「...죽은 모든 교우들의 영혼이 천주의 자비하심으로 평화의 안식을 얻게하소서」라고 기도한다.그리고 우리는 사도신경을 통하여 「모든성인의 통공을 믿으며」「산이와 죽은이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믿나이다」라고 신앙을 고백한다.
이와 같이 우리의 신앙생활은 위령의 달이 아닐지라도 삶과 죽음의 장벽이 없이 항상 산이와 죽은이다. 온전히 그리스도의 신비체로 한몸을 이룬 지체로서 통공하며 살아가는 삶을 영위하고있다.
즉 우리는 영원히 죽음을 이기고 평화의 안식을 누리는 개선교회의 전달을 구할뿐만아니라 세상에서 보속을 다하지 못한 영혼들이 단련교회를 위해 기도하고 대속하며 나아가서 하느님의 나라 건설을 위해 이지상교회에서 죽음을 이기고자 투쟁하는 삶을 영위하고 있다.
특히 연옥영혼을 돕는 신심은 이미 육신을 떠났기때문에 공로를 세울수없는 불우한 영혼들의 처지를 도울뿐만아니라 하느님을 참미할 영혼들을 천국으로 들게하는 일이므로 곧 하느님께 기쁨과 영광을 드리는 것이오 또 우리의 대속으로 천국에 들어가는 영혼들은 우리를 잊지않고 전구해 줄것이므로 이 신심은 연옥 영혼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고 우리자신을 위한 신심이기도 함을 인식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은 위령성월이 끝났다고해서 죽음과 무관한 삶이 될수없다.어떻게 보면 사실 인간의 삶이란 죽음을 준비하는 삶이다. 그것은 육신의 죽음이 바로 영생과 직결되는 삶이어야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위령성월을 보내면서도 지속적으로 우리들 신앙인의 자세는 가다듬어져야한다.
우선 우리는 자주 죽음을 묵상하고 죽음과 밀착된 삶을 영위해야한다. 지상 나그네의 삶이 내세를 위한 준비기간일진데 우리의 의덕과악덕, 선행과 악행의 그 어느하나도 모두 죽음과 연관되고 직결되지 않을수 없다.
구약성서에도「지혜로운 사람은 마음이 초상집에있고 어리석은 사람은 마음이 잔치집에있다 」(전도서74)고 한바 죽음을 묵상하는 삶이야말로 참으로 현명한 삶이다. 또 신약성서에「영혼의 죽음」이란말이 있다.
그러나 이 죽음이란 영혼이 소멸된는 말이아니고 대죄로 인하여 영혼의 생명인 은총을 상실함을 뜻하는바 이것을 영혼의 첫째 죽음이라하고 그상태로 세상을 떠나 결정적으로 지옥에 떨아짐을 영혼의 둘째 죽음(목시록2ㆍ11)이라고 한다. 따라서 우리는 육신의 죽음을 두려워한것이 아니라 영혼의 현세적 내세적 죽음을 두려워해야한다. 즉 이 지상생활에서 경계해야할것은 바로 영적인 죽음(골로사이2ㆍ13)이요 실질적인 죽음인(묵시록3ㆍ2)죄의 노예상태를 벗어나지못함을 두려워해야한다.
다음으로 우리는 죽음을 이기기 위해 그리스도와 항상 일치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셨으며 또한 우리는 신비로운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로써 그의 생명으로만 영생을 살아갈수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육체를 따라살면 죽기때문에 성령의힘으로 육체의 악한행실을 죽여야하며(로마8ㆍ13)그리고 세속적인 욕망을 죽여야하며(골로사이3, 5) 나아가 모든 죄악을 죽여야한다.즉 영생을 위해 육체의나 욕망의나, 죄악의 나는 죽여야한다. 그리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죽을때만이 그리스도와 같이 부활의 생명을 얻어 누릴수있을진데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와 일치하고 밀착되지않는 삶은 종국에가서 돌이킬수없는 결과를 자초한다.
끝으로 우리는 통회와 보속을 게을리하지않고 의덕과 선행으로 공로를 쌓아야한다. 죄는주님을 저버리고 미워함이나 이를 용서받자면 언제나 우리는 간절한 통회와 보속의 나날을 보내야한다. 보속은 기도와 선행과 극기로 이루어져야 하는바 임종때에 가서 보속을 하겠다고 한다면 참으로 미련하고 어리석고도 위험천만한 일이라 하지 않을수없다. 또 보속은 자신의 죄는 물론이지만 세상의 죄까지도 보속하기를 힘써야한다. 그리고 적극적인 선행으로 공로를 쌓아야 한다. 우리가 기적을 바랄때는 그리스도의 전능을 빌어야하지만 우리가 선공을 쌓으면 그리스도는 우리의 채무자가 되실수 있다. 무엇보다도 선공이 될수있는것은 그리스도를 모르는 영혼들과 죄중에있는 영혼들을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누구나 영생의 시작인 죽음을 항상 준비해야한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