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6월 27일,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든 역사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인체 유전자, 즉 게놈(Genome)의 신비가 벗겨진 것이다.
미국과 영국이 중심이 된 국제컨소시엄 형태의 연구팀은 인간게놈프로젝트(HGP)와 미국의 생명공학기업 셀레라 지노믹스가 공동으로 이날 게놈 해독결과를 발표했다.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게놈 해독은 인류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의 하나』라고 강조하면서 지난 60년대의 인간의 달 착륙에 비류했다. 참으로 놀라운 과학문명의 업적이라 아니할 수 없다. 게놈 해독결과는 물론 완전한 것은 아니다. 최고의 창조물인 인간의 모든 유전자 배열을 풀어내기까지는 앞으로도 여러 해가 더 걸린다. 그러나 비록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이번에 발표된 결과만으로도 게놈 해독이 인류사에 기여할 부분이 엄청나리라는 예상을 할 수 있다.
인류의 꿈인 무병장수가 머잖아 이루어질 수도 있다. 발표에 의하면 인간의 게놈은 인체세포에 존재하는 23쌍의 염색체와 그 46개 염색체를 이루고 있는 DNA(핵산), 그리고 이를 구성하는 무려 30억 쌍에 이르는 염기들의 이중 나선형 조합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번 연구로 이 배열의 해독이 가능하게 됐고, 결국 모든 질병의 원인을 보다 쉽게 규명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으로 설명되고 있다. 이대로라면 암이나 치매같이, 원인도 모르고 치료방법도 모르는, 더 나아가서는 병명도 모르는 난치병의 치료와 예방이 가능하게 된다.
그러나 우려되는 점 또한 적지 않다. 앞으로 유전자 배열지도를 통해 개별 유전자의 기능이 밝혀지게 된다면(물론 20~30년 후에나 유전자 기능 해독이 가능할 것이라 발표됐지만) 이른바 「맞춤 인간」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소재를 다룬 영화는 이미 여러 편이 있었지만 이제는 단순히 영화속의 픽션만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복제인간 제조 기술발전과 더불어 유전자 배열이 완전히 파악되면 『영화배우 ○○○와 똑같은 애기 낳게 해줘요』라는 얘기가 가능해 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 개성의 다양성이 의미없게 되고, 무엇보다도 각기 다를 수밖에 없는 개성을 바탕으로한 인간의 존엄성이 크게 도전받게 될 것이라는 말이다. 도대체 만들었다가 마음에 안들면 다시 만들고 마음에 들면 똑같은 인간을 얼마든지 만들어 내는 세상이라면 인간이 인간이 아니고 상품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를 해본다. 게놈 해독은 의학적 차원에서 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대단한 폭발력을 발휘할 것으로 예상된다. 유전정보 특허권을 보유한 선진국의 로열티 수입만 놓고보아도 선진국과 후진국간 경제적, 사회적 격차는 더욱 벌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막대한 이권이 달려있는 게놈관련 사업을 두고 국가나 기업이 서로 경쟁하듯 기발한 인간상품(?)을 개발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있을까?
이 또한 가공할 일일 것이다. 컴퓨터가 우리생활에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편리를 제공하고 있지만 그에 따르 부작용 또한 수없이 많이 있고, 우리는 이미 그 대가를 치르고 있지 않은가? 정보, 통신수단을 악용함으로써 건전한 인간관계를 좀먹는 각종 범죄와 사회현상들이 그 것이다.
하느님은 인간에게 우주와 만물을 다스릴 권한과 능력을 주셨고(창세기 1,28), 당신 창조 섭리의 모고를 열어볼 수 있도록 그 열쇠를 하나씩 둘씩 맡기고 예신다. 그러나 그 열쇠를 사용하는 데 있어서 항상 대전제가 되어야 할 원칙과 책임은 인류 역사의 시작과 마침에 있어서 변함이 있을 수 없다. 그것은 절대자이신 창조주의 창조 질서를 따르고 인간의 존엄성을 최우선의 가치관으로 삼아나가야된다는 하느님의 뜻인 것이다. 인간은 이제 게놈의 신비가 담겨있는 또하나의 창고를 열 수 있는 열쇠를 건네 받았다.
값진 보물일수록 소중하게 간직하고 잘드는 칼을 소유한 자에게는 더욱 기술적으로 조심스럽게 그 칼을 다루어야 할 책임이 따르는 것처럼 과학이 발달할수록 이것을 사용하는 인간의 책임은 더더욱 크다고 본다. 대우주와 소우주 그 모든 것이 신의 영역이 아닌 것이 없겠지만 인간이 신의 영역에 깊숙이 들어갈수록 더욱 겸손하게 창조주의 창조의지를 거스르지 않도록 조심스럽고 책임감있게 처신해야 하리라. 과학의 발전 자체가 신의 계시는 아니다. 이미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하느님의 모습과 의지는 이 세상에 드러났다. 그것은 온 인류가 그 분을 통해서 아버지께로 가는 것이다. 그분을 통해서 하느님의 영광에 참여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야말로 인류가 한 개인이나 집단으로서 어떠한 실존적 상황에 처해있다 할지라도 궁극적으로 행복을 얻기 위하여 지향해야할 목표요 우주 역사의 오메가점인 것이다. 게놈의 해독, 정녕 하느님의 크신 배려이다. 그러나 그것이 인류의 공동선, 인류의 공동체적 구원을 위한 도구로 사용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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