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박 4일 피정을 다녀온 안나씨께 좋은 피정이 되었느냐는 안부전화를 했다. 안나씨는 다른 사람들은 은총을많이 받았으나 자신은 그렇지 못하다고 했다. 남보다 두배는 더 일을 하며 열심히 살아가는、안나씨인지라 피정때도 돈버는 것에만 신경을 썼구나 하니깐 경상도 사투리로『아이다、내사 돈버는 생각안했다』란다. 그럼 집걱정을 했겠구나 라는 질문에『아이다나는 걱정도 안했고 생각도 안했다 나는 항상 생활에 걱정이라곤 없다』라고했다.
언제나 웃기만하는 안나씨의 얼굴을 상상하니 문득 내가 항상 주님의 크신 은총에 감사하며 바라보는 십자가에대해 얘기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
내가 어느 시골중학교에 다닐때였다. 수업이 끝나 교문을 나서는데 내 짝궁의 언니가 기다리고 있었다. 내 손을 잡고 잔걸음 쳐 간 곳이 성당. 좁은 성당문을 들어서면서 오늘 영세받으라는 것이었다. 이미 문답책은 다 외웠지만 갑작스런 이말에 어리둥절한 마음으로 신부님 앞에 섰다. 많은 사람들이 영세를 받은후 그 언니가 특별히 부탁드려 나혼자 다시 받는 영세였다. 신부님은 눈이 파랗고 머리가 노란 서양인이었다. 그렇게 큰 신부님앞에서 처음으로 혼자 질문을 받게되니 자연 위축되고 아는 문제도 쉬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문답이 끝난후 신부님은 이 부족한 죄인이 죄를 씻으시고 하느님 안에서 새 삶을 주는 영세를 베푸셨다.
그리고는 반짝거리고 예쁜 수정같은 묵주와 검은 나무묵주를 내앞에 놓으셨다. 나는 그 큰신부님 손안의 검은 나무묵주를 덥썩 잡았다. 신부님이 내머리를 쓰다듬어 주셨고 그뒤로부터 나는 나무 묵주를 좋아하게 됐다.
그날밤은 성당에서 보내고 새벽에 첫 영성체를 모시게 됐다.
이는 내 몸이니 받아 먹으라는 말씀.「이 철없는 제 맘속에 주님을 모시오니 항상 떠나지 마옵소서」하면서 행여 성체가 다칠세라 조심스럽게 삼켰다.
지금까지 내생활의 가장 즐거웠던 것은 영세하던 순간이다.
얼마전 미사후에 우리는 안나씨 부부와 저녁을 함께 했다. 성의껏 식탁을 차려놓고 밥을 담으려고 뚜껑을 열고 밥위에 주걱으로 십자가를 그었다.
십자가를 긋는 순간 안나씨가 왜 십자가를 반대로 긋느냐고 했다. 위에서 부터 그어야지 왜 옆에서 먼저 긋느냐는 것이었다.
그뒤 일주일이 지나 안나씨와 나란히 미사 참예를 했다. 미사중에 이마에 십자가를 긋는 순간 안나씨가 또 지적했다. 미사후 신부님께 여쭈어 보았더니 역시 잘못된 것이었다.
내가 근 30년간 그은 십자가는 헛됨이 됐고 습관된 순서를 바꾸는데 애를 먹었다.
그러면서 곰곰히 내가 성체를 모시는것도 생각해 본다. 다른 신자들의 입과 신부님의 입을 보니 맛있게 씹어 삼키는것 같다. 그러나 30여년간 잘못된 십자가를 그은것 처럼 성체도 잘못 모시는게 아닌가 싶으면서도 성체를 입에 넣으면 이는 주님의 몸이라는 생각이 떠오르면서 씹을 수가 없다.
하여튼 나는 주님께 은총을 듬뿍 받은 사람이다.
자식이 몸이 약해 병석에 있는 어머니를 생각해 보라. 반면 나는 정상아 셋을 낳았고 이민 생활에 아이 셋이 모두 건강함을 항상 주님께 감사드린다.
언제부터인지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게 됐다. 「주님、제가 주님의 십자가의 어느 부분을 잡고 가면 당신의 그 무거운 십자가가 가벼워 질까?」하고 기도하는 순간 십자가 끝부분에 시선이 고정됐다. 거기를 잡고 뒤따라가면 주님의 짐은 가벼워질것 같았고 어깨가 덜 아프실것 같았다. 그 뒤부터 나의 눈은 언제나 십자가 끝부분에서 멈춘다.
1년전 청량리 성당 보좌 신부님께『신부님、저는 십자가의 끝부분을 잡고 주님을 뒤따르면 주님의 짐이 가벼워지실것 같아 주님께「끝부분을 잡고 뒤따르게 해주소서」라고 기도 한다』고 말씀드리니 거기를 잡으면 십자가가 더욱 무거울것이리라 한다.
그래도 언젠나 나의 시선은 그곳에 집중되고 눈으로、마음으로 그 끝을 잡고 뒤따른다.
그러나 내가 눈으로 잡고 가는 십자가가 주님을 더 무겁게、더 힘들게 하는건 아닐런지….
주님!제가 30여년이나 십자가를 잘못 그었듯이 저의 성체모심이나 십자가를 이죄인 용서하소서. 또한 저를 주님종으로 택해주신데 감사드리며 제 손을 잡고 성당문을 들어서 나에게 주님의 은총 받게해준 언니는 수녀생활을 하다 주님품으로 갔으니 언니께도 감사함을 느끼고 언니의 영혼이 주님과 함께 영원한 안식 누리게 기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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