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1년 1월 18일字 (제1238號) 4명「여성살롱」란에「이웃」이란 제목으로 게재된 마 유리안나씨의 글을 읽었을때、안타깝기 이전에 내 내부깊숙한 곳에서 일어나는 반성의 기미를 느낄 수가 있었다.
나는 나환자인데 이제 치유가되어 정착촌에서 살고있다. 『자활하기에도 어려운데 남을 동정할 처지가 되느냐』고 혹자는 말할 수도 있을것이다. 옳은 말일 수도 있다. 그리고 또한 수긍이 가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나 아니다. 돈 1만 원을 (나에게는 큰돈이지만) 준다고 하자. 영이 아버지는 몸을 다쳐 누워있고 아기는 아물지도 않은 수술자리를 그대로 퇴원시켰고 소값은 떨어지고 하는데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돈많은 자선가가 나서야지 (나설테지) 내가 나설 입장이 못된다…아무리 생각을 해도 나의 변명은 양심이 허락치 않는다.
예수님께서는『굶주린 사람에게 밥을 주는것이 곧 내게 주는것이요、헐벗은 사람에게 옷을 주는것이 곧 내게 주는것』이라고 하셨다.
궁리끝에 나는 묘안(?)을 얻었다. 1백만 신자가 1원씩만 모으면 1백만 원이 10원 씩만 모으면 1천만 원이 되고 1백만 원씩 갹출하면 1억이 된다.
1백만 신자가 다 참여할 수는 없다. 10분의 1이면 10만명、(기대하지 말자) 1백분의 1이면 10만명、(기대하지 말자)1백분의 1이면 1만명인데 이 1만명이 1백 원씩이면 1백만 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까) 1천 명이 호응하여 1천 원씩만 갹출해도 1백만 원은 되겠지. 진합태산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남을 도우는데 너무 적은 돈이라 부끄러워 하고 주저하는 것이 그만 인색하게하는 결과를 맺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사랑을 배운 우리들이 너무 소심한 탓이 아니었던가.
체면을 찾고 눈치를 보며 입으로는 사랑을 부르짖으면서 실행을 못하는 용기없는 우리、아니 나 자신이 단돈 백원이라도 내는 사람보다 못난 사람인가를 뼈저리게 깨달았다.
그렇다. 용기다. 그리고 실천이다. 아무리 작은일이라도 용기가 없고 실천이 없을때는 이루어질 수가 없고 따라서 사랑도 이루어질 수가 없다.
1백만 신자중에 1천분의 1만 호응해 주신다면、아니 1천명 중에 한사람、또는 두사람 세사람만 뜻을 같이한다면 영이네 집에 한줄기 빛을 안겨줄 수 있을지 모른다. 「이웃」을 투고해 주신 마유리안나씨에게 감사드리면 또한 용기를 일깨워주신 주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이글을 보내오신 손장현씨는 나치유자의 어려운 길을 걷고 있으면서도 영이어머니에게 1천 원을 우송하려고 마 유리안나씨의 주소를 문의해왔읍니다. 마 유리안나씨의 주소는 우편번호「354의 15 충남 서산군 문산면 갈산리」입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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