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학년이 된 어느날 나는 왼쪽눈 앞에서 무언가 까만것이 어른거리는 것을 느꼈다. 처음에는 티가 들어갔나싶어 깨끗한 물로 씻어보기도 했다. 나아진것 같기도 하다가는 이내 다시 어른거리곤 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심각하게 여기진 않았다. 좀 있으면 괜찮아지겠거니 하는 생각이었다.
이러한 증상이 시작된지 며칠 안되는 어느날、어머니께서는 함평 어느 해안으로 해수찜을 하러가게 되었는데 나도 같이 가자고 하셨다. 어머니 친구되시는 동네 아주머니네 식구 몇사람과 누나를 포함한 우리 세식구가 함께 떠났다. 어른들은 아마도 요통이나 피부병 따위의 치료가 목적이었던 모양이지만 내게는 단지 즐거운 소풍나들이 일뿐 그 이상의 의미는 알지도 못했고 또 알필요도 없었다.
간간이 파도가 미려오는 해안 갯벌에는 게와 고동、그밖에 난생 처음보는 바다 생물들이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고무신을 벗어서 잡곤하던 소금장이며 방게같은 민물에 사는것들보다 크기도 훨씬 더크고、빠르기도훨씬 더 빠른 이름도 모를 수많은 생명체들이 여기 저기서 연신 꿈틀거리는것을 나는 재미나는 듯이 들여다 보고 있었다. 해수찜이란 바닷가에 목용탕 같은 것을 만들어 놓고 불에 달군 뜨거운 돌로 물을 데워 그속에 들어가서 한참동안 찜찔을 하는것인데 어머니께서 시키는대로 나도 그속에 들어가기는 했지만 얼마있지 않아서 이내 빠져 나오고 말았다. 나에게는 뜨거운 찜질보다는 시원한 바닷바람을 쏘이는것이 훨씬 좋았고 싸가지고 온 음식에 더 큰 관심이 있었다. 즐거운 하루였다. 그러나 그것이 문제였다. 모처럼의 즐거운 나들이에서 시간가는 줄을 몰랐던 우리들은 급기야 돌아오는 차를 놓치고 말았다. 그렇지만 논길 밭길을 걸어오는 10여리 길에서 우리는 노래도 불러가며 농담도 던져가며 지루한 줄을 몰랐다.
한다리에 도착했을때 이미 해는 서산에 진지 오래고 주위는 온통 어두움에 싸여있었다. 피곤한 다리를 쉬며 우리를 실어다 줄 차를 기다리고 있을 즈음 내앞에 앉아계시던 어머니께서 갑자기 내 어깨를 움켜쥐시는 것이었다.
의아해하는 나에게 어머니께서는 다급한 어조로『네 눈이 이상하구나』하고 말씀하셨다. 당황한 내가 어머니께서 시키는대로 오른쪽 눈을 가려 보았을때 이게 어찌된 일인가? 금방까지만 해도 저앞에서 환히 반짝이던 전등 불빛이 아스라하게 보이질 않는가.
이튿날부터 잃어버린 한쪽 눈의 시력을 되찾기 위한 전국일주가 시작되었다. 모든것이 허사로 끝났지만 어쨌든 이때 나는 처음으로 긴여행을 해보았다. 그중 부산 남해고속도로는 물론 경전선철도도 아직 부설되지않은 때여서 우선 기차편으로 여수에 가서 그곳에서 배를 타고 부산으로 갔다. 한려수도의 섬사이를 7시간 반동안 여객선을 타고 가로질러 간 것이다. 그림이나 영화에서만 보던 조그만 돛단배들이 수평선 저너머로 끊임없이 오고 가는것이 보였다. 강렬한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푸른바다를 우리가 탄배를 간간이 고동소리를 뒤로하면서 헤쳐나갔다.
갑판의 난간에 기대서서 문득 배의 뒷전을 바라보는 순간、내가슴은 설레이기 시작했다. 그칠줄 모르고 배의 꽁무니를 쫓아오는 부글부글 끊는듯한 흰거품의 물거품이 이루는 신비로운 빛깔의 조화는 17년이 지난 지금 이순간에도 내눈에 여실히 살아서 움직인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그후로는 다시는 바다를 볼 수 없었다.
1년뒤 이번에는 하나 남은 오른쪽 눈에 마저 그 악마의 시커먼 그림자가 덮쳐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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