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학년을 맞이한 어느 봄날이었다. 지난해 왼쪽눈에 있었던 것과 똑같은 증상을 이번엔 오른쪽 눈에서도 발견하게 되었다.
이번에는 급히 손을 썼다. 광주 어느 병원에 갔더니 『계속 안정하고 치료만 잘하면 고칠 수 있겠다』고 했다. 입원생확이 시작되었다. 한쪽 남은 눈마저 안대로 가려버린 나에게는 이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하루에 한번 치료를 위하여 안대를 벗길때면 내눈에는 다시금 환한 빛이 들어왔다. 내눈앞에서 열심히 움직이는 의사의 손이 먼저 보였고 이어서 하얀까운、옆에서 나를 지켜보고 계시는 어머니의 얼굴…모든것들이 차례로 시야에 들어왔다. 창쪽으로 놓인 화분의 넓고 푸른 잎사귀는 더없이 시원한 느낌을 주었다.그러나 그것도 잠시 동안의 일일뿐 치료가 끝나면 이내 내눈은 다시금 안대로 가려져야만 했다.
이무렵 나는 「한숨」이 가지는 참의미를 처음 깨달았다. 치료를 마치고 입원실로 되돌아오던 어느날 안대로 눈을 가린 내손을 이끌어 진찰실 문을 나오면서 내신을 찾아 챙겨주시던 어머니께서 긴 한숨을 쉬셨다.그러자 옆에 있던 웬 아주머니가.
『아니 왜 못 고친다고 하던가요』하고 물었다. 어머니께서는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그저 『아니에요…』하고 말았을 뿐이다. 나는 지금도 무심결에 한숨이 나올때면 문득문득 그때 병원 문간에서 들었던 「어머니의 한숨」을 생각하곤 한다.
간호원이었던 미스 조누나는 나에게 특히 친절했다. 어느날 저녁 무렵의 일이다. 그날도 그녀는 나를 병원뜰로 안내했다. 그때 담너머로 노는 아이들의 왁자지껄하게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친절한 간호원 누나는 『종천이도 이제 조금만 있으면 저아이들과 같이 뛰어놀 수 있을거야』하고 말하였다.
『네. 그렇겠지요』
대답은 하였지만 그순간 「뛰어놀 수 있을것」이라는 그 말이 어쩐지 「그렇게 될 수 없을것」은 혹시 아닐까하는 불길한 예감이 뇌리를 스쳐 지나가는 것을 어쩔 수는 없었다.
한달 남짓한 입원 생활을 끝내고 퇴원하던날 불운한 의사선생님께서는 우리 부모님께 서울 맹학교를 소개해 주었다.
또다시 이병원 저병원을 찾아 전국 각지를 헤맸다. 수술과 입원의 반복、무슨 신비의 비법으로 조제 되었다는 약、그러나 모든 것이 허사였다. 이윽고 우리는 단념하고 말았다. 우리는 과학을 넘어선 그어떤 힘에 대해서는 신뢰하지 않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모든것을 포기한채 집에서 지내던 6개월간의 초기에는 전에 즐겨읽던 책들의 떨어진 장을 내손으로 풀을 붙이고 겉장은 깨끗한 종이로 덮개를 씌울 수 있을 만큼의 시력은 남아 있었다. 그것들을 읽을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나는 그것들을 책꽂이에 가지런히 꽂아놓고 아끼고 있었다. 그렇다고해서 그것들을 다시 볼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내게 있어서는 그것말고 또 달리 소중한 것이 없었던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던 어느 늦여름밤 우리 식구들은 마당에 평상을 갖다놓고 앉아 과일을 먹고 있었다. 문득 아버지께서 『저달이 보이느냐?』고 물으셨다.나는 고개를 쳐들고 하늘의 여기저기를 더듬어 갔다. 뭔가 희뿌연 것이 보이는듯 싶었다.『네. 보입니다』아버지께서는 한참만에 다시 입을 여셨다.『잘봐둬라. 저 달마저 보지못하게 될런지도 모르니까』나는 좀더 자세히 보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그러면 그럴수록 내눈에 비치는 달빛은 희미해져만 가서 나중에는 어느것이 달빛이고 어느것이 별빛인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그나이의 내가 『저달이 슬픔인줄은 예전에 미처 몰랐어요』하던 소월의 사정을 알 수는 없었지만 그러나 그달은 정녕 슬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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