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기도 몸서리 쳐지는 무수한 시련과 고통의 나날들、시달리며 참고 이겨내느라 가슴은 멍들어 값진 상처로 얼룩이 져있고 더럽히지 않으려고 신앙을 지킴으로써 마음과 정신은 보다 나은 내일을 가꾸고자 몸부림 치고있다.
나는 육년 우등생으로 국교졸업을 하였지만 넉넉치 못한 가정형편에다 부친을 잃어 상급학교 진학을 못했다.
향학에 불타 주경야독으로 땀흘리는 생활을 하던중 오빠가 사업에 실패. 잠적하여 많은 채무와 칠순의 어머님을 봉양해야 하는 17세의 「소녀가장」이 되었다. 장작을 패주어 굶주린 배 채워보기도 하였으며 두 모녀 입에 풀칠이라도 하기위해 밤을 새우며 수수빗 자루를 만들기도 했다.
허구한날 배고픔을 참다 못하여 물 한그릇으로 끼니를 때워가며 근근이 모은 금액으로 돼지새끼 두마리를 샀다.
빈털털이 우리에겐 오랫만에 가져본 재산이어서 희망과 기쁨으로 가득했는데 돼지새끼는 병돈이었다. 살려보기위해 갖은 방법으로 노력했지만 결국 모녀의 꿈은 산산조각이나 하염없는 눈물만이 앞섰다.
실의에 빠져 패기가 없는 나에게 고모님께서 용기를 주시며 깊은 신앙을 심어주었다. 주일이면 담양 본당 창평공소에 나가 교리를 배워 이듬해 부활절에 세례를 받았다.
추운겨울 꽁꽁언 얼음밥으로 점심을 때우며 한 푼이라도 더 벌어 보려는 욕심에 빈약한 소녀의 몸이었지만 항상 지게를 지고나가 영세민 취로사업장 일을 강행했고 노임을 절약하고자 초가지붕 이엉을 엮다보면 손에서 피가 흐르기도하고 밤이면 육신의 아픔을 견디기가 고통스러워 홀로 울기도 했다.
두엄을 지고 비탈진산을 오를때면 뼈아픔에 힘들어 항상 주모경을 외워가며 아픔을 참으며 일을 했다.
무슨일이든 선머슴처럼 억척스럽게 했으므로 주위에선 나에게 총각이란 별명을 붙여줬다. 모진 각고끝에 돼지새끼를 여러마리 구입하였고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담양에서 10㎞(25리) 거리까지 돼지 먹이를 운반하기도 했고 우리 모녀가 한끼씩 굶어 그밥을 돼지에게 먹여키울 정도로 모녀의 혼을 담아 열심히 키웠다. 돼지는 부지런히 잘커주어 독촉장이 자주 나온 조합차용금일부를 갚게 됐다. 그러던중 만물이 약동하는 따뜻한 어느 봄날 두 모녀의 꿈을 가꾸며 의지한 집에 미납된 차용금때문에 차압이 붙여졌다. 무일푼인 우리에겐 청천벽력이었고 도저히 해결할 능력이 없었기에 시계초침 소리가 시한폭탄처럼 들리는、두 모녀의 생명을 재촉하여 조여오는것 같았다.
그러나 주님께선 우리 모녀의 딱한 사연에 은총을 베푸시어 친척의 도움으로 경매일 하루를 남겨두고 정리를 할 수 있었다. 그후 나이 어린 여자에게 자금을 융통해 주기 꺼려하는 채권자들 때문에 잠 못이루며 괴로와하는데 친척언니의 헌신적인 도움으로 병아리 사육을 시작하게 됐다. 여기서 나온 판매금 일부로 돼지새끼를 사서 키웠으나 중돼지 될 쯤 콜레라로 큰 피해를 보고 육용계 5백수를 육추했는데 2일째 되던 아침 전기 누전으로 계사와 병아리는 삽시간에 잿더미가 되어 마음은 말할 수 없는 괴로움과 절망으로 빠져들고 말았다. 자꾸만 허물어지려는 자신을 주께 의지하여 막연한 마음으로 면단위 조합을 찾았다. 의외로 참사님께서 나의 청을 수락、자금대출을 해줘 다시 양계업을 할 수 있었으며 발전에 영광을 갖게되어 주택개량까지 했다.
나는보다 체계적인 전업양계를 펼치고자 터를 빌려 손수 계사를 신축했다. 축산물 유통과정이 시원치 않는데다 생산과잉으로 양계는 오랜불황에 허덕이게 되었고 사료구입이 매우 어려워 먼거리를 고달픈도 잊고 자전거로 사료조달을 기도했다.
그런데 80년 4월 5일은 내 생애에 있어서 생사도 구별하기 힘든 악동의 날이었다. 번개와 천둥을 동반한 심한 폭풍우는 계사와 나의 모든것을 송두리째 앗아갔고 칠순의 어머님께선 넋을 잃어 눈물만을 흘리시고 가슴은 터져 미쳐 버릴것 같았다. 그러나 절망하고만 있을 수 없었던 나는 온갖 고초와 어려움을 무릅쓰고 복구에 심혈을 쏟아 계사를 지었다.
이같은 숱한 고행의 역경에 무릎끓을 줄 모르던 나는 정신병자 취급도 받고 또 순이로 물려지기도 했다. 본격적으로 양계를 시작한 지난 5년동안 내 혼신의 정성을 쏱아온 빈계사를 다시 가축으로 채워보겠다는 일념과 그동안 짊어진 채무를 갚기위해 보험회사 외판원으로 나섰다.
혼자의 힘만으로는 나의 작은 꿈을 실현하는데 어려움이 예상되지만 이역경 속에서도 결코 좌절하지 않고 진실된 인간상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주겠다는 일념으로 기도하고 노력할 뿐이다. 어린 나이에 숱한 고난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오직 신양의 힘때문에 등불을 밝히는 존재가 되도록 애타게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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