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듬해 3월 나는 서울 유학으로의 장도에 올랐다. 아버지의 친구분 한분은 나에게 헬렌켈러를 이야기하며 점자로 공부를해도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다고、자신이 일본에서 공부할때 유명한 맹인 선생님 밑에서 공부했다는 학생들도 여럿 만나본 일이 있다고 하시면서 여러가지 이야기로 나를 격려해 주셨다. 나는 쉽게 수긍했다. 서울에 가면 나같은 사람도 공부할 수 있는 훌륭한 학교가 있다는 기대감 같은것 마저도 내겐 있었다.
그러나 정작 출발을 알리는 기차의 기적소리가 울겼을때 그것은 이부자리며 옷가지를 싸들고、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머나먼 서울땅을 향해、정든 가족들의 품을 등지는 12살의 눈먼 소년을 기어이 울리고야 말았다.「서울시 종로구 신교동 산1번지 국립서울 맹학교」.이곳은 내가 국민학교 4학년으로 부터 시작하여 중학교ㆍ고등학교를 졸업하기까지 아홉해동안、즉 소년기에서 시작하여 성인의 문턱에 들어서는 그날까지를 몸담은、그러기에 내 추억의 대부분을 그곳에 담고있는 나의 「또 하나의 고향」이라고나 할까?
학교측과는 이미 서신왕래가 있었던 터라 간단한 수속을 마치고、교장선생님과 그밖의 필요한 분들에게 인사를 드린뒤、곧장 기숙사로 찾아갔다.
사감선생님께서는 중앙기숙사 10호실을 내가 있을 방으로 정해 주셨다.
이듬해 아버지께서는
『선생님 말씀 잘듣고、공부 잘해라. 아프거나 무슨일이 생기면 즉시 연락하고…』
하는 말을 남기시고 고향으로 떠나가셨고 그 뒷전에서 나는 난생 처음 느껴 보는 공허를 맛보았다.
몇해전에 나에 관한 기사를 취재하기 위하여 나에게 이것저것을 물어보던 某방송국 직원이 내 이야기의 이대목에서
『울기도 꽤 많이 울었겠군요?』하고 질문한 일이있다. 그때 나는
『나보다 아마 우리 어머니께서 더 우셨겠지요』
하고 대답하였다. 우리 두사람은 정말 많이 울었다. 나는 객지생활을 감당하기에는 아직 너무 어린 나이였고 어머니께서는 천리밖에 눈먼 자식을 떠나보내 놓은 여인이었다. 그러나 나는 결코 맹학교에 갓들어온 다른 아이들마냥 「울보」라는 별명을 듣지는 않았다. 남들이 보는 앞에서는 절대로 울지 않았던 것이다.
기숙사에 새로 들어온 동료를 맞이하는 학생들의 태도는 친절하기만 했다. 식당과 화장실 찾아가는 방법에서부터 시작하여、학교의 이구석 저구석을 데리고 다니면서 자세히 일러주었다. 때로는 손으로 만져보기도하고、발로 굴러보기도 했으며.、두들겨서 소리를 내주기도 했다. 나는 몇달이가지 앉아서 교내의 이곳저곳을 혼자서도 다닐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그렇게 될 수 있기까지에는、가족들에게는 되도록 비밀로 하고 있었지만 계단에서 발을 헛디뎌 넘어진 일이라든가、벽모서리 같은데에 부딪쳐서 주먹만한 혹이 난적이 한두번이 아니었음은 더 말해 무엇하랴?
입학해서 며칠 안되던 어느날의 일로서 지금와 생각해보면 퍽재미있는 일화 한토막이있다. 새로 알게된 같은 또래의 한친구와 함께 이런이야기 저런이야기 끝에 우리들의 눈에 관하여 이야기하게 되었다. 그는『내눈에는 안구가 없어、그래서 눈은 항상 감겨져 있지』
하고 털어놓았다. 나는 그눈을 한번 만져 봤으면 하는 충동을 느꼈지만 차마 그말이 입밖에 나오질 않았다.그러나 궁금하다는 듯이 『그렇다면 아예 깜깜하겠구나』
하고 물었다. 그는 그렇다고 했다.그러나 아주 어려서 실명한 그로서는 「깜깜하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잘 이해하지 못할런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그는 「밝다」는 것이 어떠한 것인지 잘이해하지 못할 수가 있기때문이다. 나는 그때만해도 아직 밝은날에는 원색계통의 색깔은 어렴풋하게 나마 구별할 수 있을만큼의 시력은 남아있던 터라 무심코 이렇게 물었다.
『깜깜하다면 답답해서 어떻게 살지?』
그랬더니 그는『별로 답답한 줄은 모르겠어』
하고 웃으며 대답했다. 그러나 그런일이 있은지 1년이 채못되어 나도 그와 같은 신세가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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