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도 (古都) 수원의 성곽을 끼고 돌아보면 조금 외진곳에 수원교구청이 있다. 주소는 외우기 쉽게 화서동 100번지이다.
한때 아주 짧은 기간을 그곳 3호실에서 지냈다. 하기야 군종신부 생활을 마치고 「로마」로 오기전에 20여일 산것 뿐이니까 따지고 보면 재단하고 남은 천 조각이나 쓰다보니 생긴 여백과도 같은 기간의 삶이었지만 그래도 한순간 그리워지고 되돌아가고픈 생활이었고 잊지못할 방이다.
3호실하고 여관방 같은 느낌을 풍기는 이름이 붙어있는 교육원에 속해있는 방이기 떄문이다. 침대 책상 옷장을 들여놓으니 꽉차서 움직일때 조심하지 않으면 안되는 조그마한 방이지만 그래도 죽은후 차지할 땅 보다는 상당히 큰 방이다.
군종신부 생활을 하면서는 자신의 교구인데도 무언가 소외감 같은 것을 느꼈기에 그래도 한 사람의 교구 신부라도 더만나고 교구의 추이를 하나라도 더 눈 여겨보고자 짧은 기간임을 마다 하지않고 전역한 다음 무조건 가방을 들고 들어간 곳이었다.
그리고는 마냥 기뻐하며 살았다. 그런 좁은 방에서 그짧은 기간에 뭐가 그리 좋았었길래 호들갑을 떠느냐고 물을것이다.
더 이상 제복을 입었을때 처럼 긴장하지 않아도 되었고 비록 군에 있을때 보다 더 일찍 일어나기도 했지만 그래도 더이상 출근하지 않아도 되었다.
더이상 많은 사람을 만나지 않아도 되었고 주일이 돌아와도 부담이 되지 않았으니 일종의 해방감마저 느꼈다. 본당에서도 마찬가지겠지만 군종신부 생활하면서 주일강론 준비는 무척 힘겨웠다.
월요일이면 다음 주일 성경을 읽고는 일주일 내내 준비 한답시고 생각하지만 경험도 없는데다 사실 차분히 앉아서 할 경우는 드물고 대부분 시간에 쫓겨 차타고 다니면서 해야만 했다.
물론 시간을 계획적으로 사용 못한 탓도 있겠지만 참으로 만나야 할 사람도 많고 해야할 일도 많았기 때문에 한주일 내내 강론은 큰 부담을 주었고 주일이 되어 대여섯대 미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차 속에서의 기쁨 중에는 강론을 잘했건 못했건 마쳤다는 기쁨도 포함되었다. 그러나 그다음 날이면 또 다음주 강론이 부담되었다. 그러니 주교관 생활이 기쁠 수 밖에 더 있었겠는가! 물론 이런 기쁨이란 사실 따지고 보면 좀 변태적인 것이기는 하다.「로마」에서의 생활이 어떠냐고 묻는 편지가 이따금 온다. 이곳 생활은 뒤늦게 공부에 뛰어들어 가끔 골치가 아픈것 외에는 주교관 생활과 비슷하다. 주교관 3호실 보다 조금 더 큰 방 811호실에 역시 침대 책상 옷장이 있다. 그리고 이 조그만 방에서의 생활이 하루의 거의 전 시간을 차지한다. 학교가는것 외에는 좀처럼 나갈일도 나갈 필요도 없다.
그런데 이곳에서의 기쁨은 좀 더 변태적이다. 정류소에서 갈아타려고 기다리던 버스가 빨리 왔을때 라든가 교수가 강의하는 것이 귀를 울리면서 그것이 소음이 아니고 신기하게도 어떤 뜻이 되어 머리속에 들어 올때、내 서툰 말을 알아듣고 정답게 답해줄때 라든가 길에서 노리탱탱한 나 닮은 얼굴을 보았을때 말을 걸어보면 한국사람이 아니라서 가끔 실망할때도 있지만、그리고 편지통을 보았을때 둘레가 빨갛고 퍼렇고한 봉투가 놓여있을때다. 그외에도 내 작은 방에서 느끼는 기쁨은 각양각색이다. 좋은 일을 하고나서 느끼는 흐뭇한 기쁨 같은것들、어서 이런 변태적 기쁨에서 벗어나 신부로서의 일을 하면서 기쁨을 갖는 시기가 왔으면 한다.
지금까지 서울 당산동 본당 주부인 조한순씨께서 수고해 주셨읍니다. 이번호부터는 수원교구 소속이며 이태리 유학중인 윤민구 신부께서 집필해 주시겠읍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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