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맹학교의 학생이된 나로서 무엇보다도 먼저 익혀야만 했던 것은 점자였다. 점자란 종이에 구멍을 뚫어서 그 튀어나온 점을 손끝으로 만져서 해독하는 맹인들의 문자다. 맹교육의 초기단계에서는 일반 문자의 모양을 판에 새겨서 그것을 손으로 더듬어 읽었다고 하나, 루이 브라이유라고 하는 프랑스의 맹인이 여섯점의 조합으로써 표기하는 점자를 고안한 이래 세계 각국은 모두 이것을 이용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약 50년전에 이 부레일식 점자를 이용한 한글점자가 서울 맹학교의 전신인 재생원 맹아부에서 교편을 잡고 계시던 송암 박두성 선생에 의해 창안을 보았다. 송암선생께서는『이렇게 훌륭한 일본어 점자가 있는데 한글점자는 만들어서 무엇하겠는가』고 하는 일인교사들과 경관들의 눈을 피해 야간에만 몇몇 학생들을 자신의 집에 모아놓고 점자연구에 전념하시다가 그 자신마저 실명할뻔한 안질을 얻는 등의 오랜 각고끝에 한국맹인들의「어두움」에「빛」을 밝히는 한글점자를 창안하셨던 것이다. 참으로 그는 이땅 10만맹인의 세종대왕이었다.
모든점에서 친절했던 맹학교의 선배들은 내게 점자를 가르쳐 주는데도 정성스러웠다.『아 126점, 야 345점』하면서 점자표기법을 몇번이고 되풀이해서 일러주는 그들의 음성은 마치 친형님의 음성 그것이었다.
점자를 쓰기는 오히려 쉬웠다. 점자판에 종이를 끼우고 작은 송곳처럼 생긴 점필로 구멍을 찾아서 표기법대로 찍어가면 된다. 그러나 읽는 것은 그렇지 않았다.
무딘 내 손끝은 찍혀진 점의 위치는 고사하고, 점의 갯수마저도 알아볼 수 없었다. 매일매일 점자책을 어루만지며 씨름하던 지루하고 답답한 두달이 지난 어느날 이제는 내손끝에도 새로운 눈이 생겼다. 띠엄띠엄이나마 점자를 읽을 수 있게 되던 그날 소용돌이치는 내작은 가슴은 환의의 눈물로 범벅이 되었다. 일단 점자를 익힌 내게 있어서 학교공부를 따라가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4학년을 마치는 졸업식날 나는 우등상과 함께 전교에서 단 한명에게만 주어지는 모범상을 수상했고 그일은 또한번 우리 부모님을 애태우게 했다.
맹아학교에서도 봄 가을이면 소풍도 가고, 운동회도 한다. 어떤 소풍지에서는 반대표로 나가 노래를 불러상품을 받기도했고 점자 도서관에서 보고싶은 책을 빌어다 읽기도 했고 정기적으로 우리학교을 방문해서 책을 읽어주던 정안(正眼)학생들로 부터 책을 읽어받기도 하면서 그런대로 나의 학교생활은 즐거운 것이었다. 특히 당시 서울에서 대학에 다니던 형님이 친구 한분이 계셨는데 그분은 틈있는대로 나를 찾아주었다. 때로는 학교 뒷산에서 때로는 가까운 공원 벤치에서 그 형과 함께 이야기하며 노는시간은 내겐 큰 즐거움이었다. 그분은 지금 모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계시지만 나는 그분을 통하여 외로운 사람에겐 다정한 벗이 되어주는것 만큼 좋은 일은 없다는 사실을 배웠던 것이다.
어려서는 운동을 좋아하지 않던 나였지만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부터는 운동에 취미를 붙이게 되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운동장에 달려나가서 맨손체조와 간단한 기계체조를 했고, 방과후에는 도장에 나가 유도를 했다. 도장의 가쁜 숨길속에서 주고받는 무언의 대화에는 훈훈함이 감돌았다. 시도 좋고 음악도 좋기는 하지만 마음이 답답할 때 운동만큼 좋은 특효약은 없었다. 서로의 땀이 뒤범벅을 이룬 가운데 넘기고 넘어가고, 덮치고 깔리고 하는동안 가슴에 맺혔던 응어리는 어느새 산산히 부서져서 멀리 사라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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