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지 몰라도 우리는 그 의미를 확실히 규명해 보지도 않은채 영명축일을 축하하게 되었고 이날이되면 은근히 축하받기를 기대하게도 되었다. 신부들인 경우 영명축일 보다도 어떤 의미에서는 서품일이 더 기념 될 만할텐데도 마찬가지이다. 서품 축일을 기념하다 보면 서로 겹치니까 그걸 피하기 위해 이렇게 된것인지 어떤지 잘 모른다. 그러나 어떻든 이날을 이해 오랫동안 떨어져 있었던 동창들을 만나고 자신의 일 때문에 좀처럼 찾아가 보지 못하던 다른 본당을 찾아가 보고 하는 등 좋은점이 많다. 이곳에 온지 얼마 안되어 영명축일을 맞았다. 연중 가장 더운때라 공부하기에 지쳐버린 몸과 마음에 활력소를 불어넣은 하루였다. 북이태리「뻬루지아」라는 곳에서 이태리 말을 배울때였었는데 미사 지내던 본당 신부의 배려로 이날 아침에는 처음으로 신자들과 함께 드리는 이태리말 미사에서 주례를 했다. 학교에 갔더니 함께 공부하던 일본인 수녀가 아직 서투른 이태리 말로 쓴 축하인사와 함께 자신이 그린 카드를 수줍게 넘겨주었다. 점심때는 식사를 하던 본당 사제관이 온통 축제 분위기고 걸맞게 한국에서 날라온 소포뭉치를 열어보니 고추장 오징어 김이 들어있었다.
저녁때 말배우러 그곳에 온 한국인 신부ㆍ수녀 신학생이 모여 나눈 식사는 그어느 일류 요리사도 흉내 못내리만큼 달랐다. 더구나 동료 신부가 축하노래를 한다며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꺼낸 종이에는 언제 했는지 주인공에 맞춘 작사가 기록되어 있었다.
이럴때 음정이야 틀린들 어떻겠는가! 얼마전에는 서품 5주년일을 맞았다. 되지도 못한 것이 신부는 일찍된덕분에 한것도 없이 세월만 흘렀음을 느끼며 마음을 가다듬고 있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같이 사는 아프리카신부들이 축하한다며 야단이다. 외국인들과 지내본 경험이적고 더구나 흑인하면 만화에서 본 식인종이나 갱영화의 악인들이 연상되어 도무지 정이 가지않던 이들에게 축하를 받으니 도리어 어리둥절했다. 저녁때가 되었는데 누가 방문을 조심스럽게 두드렸다. 들어오라고 한국말로 말했는데 반응이 없어 문을 열어보니 삐오라는 흑인신부가 손에 무얼 들고 서있었다. 그러더니 축하한다며 종이에 싼 것을 내민다. 들어오라는 내청을 끝내 거절하고 돌아간뒤 그 친구의 선물을 보니 환타 한깡이다. 사실 이렇게 엄청난 국제적 축하를 받고보면 시편 8편의 저자가 하느님께 말씀드렸듯『이 못난 사람이 무엇이길래 이토록 아니잊고 생각해 주시며 보살펴 주시는지』새삼 몸둘바를 모를 뿐이다. 이곳 사람들은 영명축일은 별로 의미가 없는듯 사제서품일을 크게 생각하고 있는데 오히려 이것은 옳게 생각하고 있는것 같고 국경과 피부색을 초월하여 하느님의 백성으로 모여 서로 정을 나눌 때 이상 야릇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서품축일에 온통 흑인 전체에게 사랑을 받은것 같아서 결국 그들과도 친해야 겠는데 친하기 전에 우리의 선입관부터 바로 잡아야 할 것같다. 외모에 치중하고 차별의식을 갖고 대하는것, 쓸데없는 우월감 혹은 멸시감 등 하느님께서 보시니 참좋았다고하신 이우주 만물이 왜 우리에겐 좋게 보이지 않는지! 하루빨리 부정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긍정적인 태도로 하느님께서 보시니 좋고 나도 좋더라 하는 식으로 생각해야겠다. 베풀어 주신 모든 은혜 감사드리며 더많은 찬미와 영광을 주님께 드릴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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