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 카로사는「인생은 만남」이라고 갈파했거니와 나는 중학교 4학년이 되면서 두고두고 잊지못할 한만남을 경험했다. 학생회에서 주최한 교양강좌에 우연히 참석했다가 만난 어떤 목사님, 그의 설교에 내영혼에 강하게도 전해오는 그 무엇이 담겨 있었다. 그 설교는 어떤 흑인이 저술하였다는「신은 실수하였다」라는 책의 내용을 소개하는 것으로 부터 사작 하였다.
『신은 무엇 때문에 어떤 사람은 희게, 어떤 사람은 까맣게 빚었는가? 신은 인간을 창조함에 있어 자뭇 심각한 실수를 범하였다. 인간은 신의 실패작인 것이다』 이어서 그는 요한복음 7장 초두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성경귀절을 인용했다. -예수께서 길을 가시다가 나면서부터 눈먼 맹인을 한사람 보셨는데, 제자들이 예수께물엇다.『선생님 저 사람이 날때부터 눈이 멀었으니, 그것이 누구의 죄입니까? 저 사람의 죄입니까? 그렇지않으면 그 부모의 죄입니까?』예수께서 대답하셧다. 『자기의 죄탓도 아니고, 그의 부모의 죄탓도 아닙니다.하느님의 놀라운 일이 저 사람에게 드러나기 위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결론으로, 인간은 누구할것없이 이 땅에서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중요하고도 자랑스러운사명이 맡겨져 있다고 했다.
그런데 나는 이즈음 쇼펜하우어가 쓴 어떤 책을 한권 읽고 있었는데 그 책에서 그는『행복은 소극적이요 고통은 적극적』이라고 극구 주장하고 있었다. 행복한 순간에는 오히려 그것을 잘 느끼지 못하나, 일단 고통의 순간이 닥쳐오면, 그것이 비록 손가락끝의 조그만 상처에 불과할 망정, 마치 전신에 걸친 통증인양 불편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그의 주장은 당시 내가 품고있던 한 생각과 결부되어 나를 몹씨 괴롭혔다. 나의 생각이란, 행복과 고통의 비율이 2대 1, 3대 1, 4대 1… 얼마라도 좋지만 여하튼 고통이 전혀 따르지 않는 삶이란 전혀 없다고 하는 그것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고통은 적극적이요, 행복은 소극적이라고 한다. 더군다나 내가 겪고 있는 이 고통은 어떠한 대가로써도 보상되어 질 수 없는, 오히려 나에게 주어진 온갖 행복의 요소를 상쇄하고도 남을 만한 것이 아니겟는가? 장차 있을지 모르는 행복의 순간을 위하여 오늘의 가시밭을 마다않고 걷는 것이 인생이라면 그 결과는 불을 보듯 환하다.
코 앞에 매달린 옥수수에 현혹돼 한발 한발 힘찬걸음을 내디디지만, 그때마다 그 옥수수도 또 한발짝씩 내 뺀다고 하는 가엾은 이태리 노세의 신세와 다를 바 없다. 이러한 사과의 진행은 나로 하여금 한사코 인생의회의에로 몰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고통이 신의 축복이고, 인간 자랑이라니? 잠못 이루는 수많은 밤이 오고갔다. 그러기를 얼마간, 드디어 내 발길은 성당을 향해 가고 있었다. 성당에서 진행되는 미사의 복잡한 의식따위가 내게 관심이있을리 없었다. 『하느님 당신의 말씀이 참인것을 믿게 해주소서』짧은 이 한마디만을 수없이 입속으로 되뇌었다. 거의 매일 새벽 미사에도 참례했다. 모두들 잠들어 있는 새벽 5시, 가만가만 자리에서 일어나, 소리죽여 세수를 하고는 교문을 나선다. 기숙사에서 성당까지는 곧장 간다해도 약 20분거리, 그러나 처음 얼마간 그길이 익숙치 않아 도중에서 한참동안 해매어야만 했기 때문에 30~40분이 예사였다.
그러나 이러한 냉정성은 헛되지 않았던지 하느님께서는 내기도를 허락하셨다. 나는 드디어 하느님은 참되신 분이며 인간을 사랑으로 내셨고, 범죄한 인간에게 마침내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보내어 십자가에 죽게할만큼 사랑으로 충만하신 분이며, 아직도 우리곁을 떠나지 않으시고, 우리가 슬플 때 같이 슬퍼하시고, 우리가 괴로울 때 같이 괴로와 하시는 정다운 친구라는 것을 믿게 되었다. 회의와 부정은 사라졌다. 라스코르니코프가 그랬듯이 알료샤카라마죠프가 그랫듯이 환희에 넘쳐 대지에 키스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성당에 첫발을 디딘지 1년만에「라이문도」라는 이름으로 영세를 받았다. 그러나 이러한 내면의 신앙이 외부에서 구체화되는 길을 발견하기까지는 아직도 1년이라는 세월을 더 기다려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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