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국에서 날라오는 편지를 읽노라면 가끔 성지에서 생활하게 되었으니 더욱 거룩하게 되어 돌아오기를 바란다는 간곡한 내용이다. 우리가 죽을때까지 덕을 쌓고 주님께 가까이 가도록 노력해야 할진대 이런 것을 도와주는 성지라는 환경이 가까이에 있는 것도 큰 복이기는 하다. 마침 이태리 말을 배우는 학원이 프란치스꼬 성인의 활동무대였던「아씨시」에는 이름난 몇곳이다. 우선 성 프란치스꼬와 성녀 끌라라를 기념하여 세운 성 프란치스꼬 성당과 성녀 끌라라 대성당, 성 프란치코 성인이 수도하신 암자, 그리고 돌아가신 곳에 세운「천사들의 성모 성당」또한 성녀 끌라라께서 사시던 수도원이다.
그런데 이런 곳을 순례할라치면 가끔 방해자가 나타난다. 주머니에 손꽃고 떠들면서 그림 감상이나 하러 성당에 들어온 친구들 말이다. 그러나 성지에 와서 화를 낼 수도 없고 슬그머니 다음 곳으로 가지만 그곳에 가도 마찬가지다. 하기야 이런 사람들 때문에 방해를 받는다는 것은 하나의 핑계임이 틀림없을 것이다. 성모승천 축일을 지낸 다음 주일날 조용한 마음으로 하루를 지내고 싶어 천사들의 성모성당을 찾았다. 그곳에는 소위 가시없는 장미로도 유명하지만 사실 그런것에는 큰 관심이 없고 성인께서 돌아가셨다는 곳에 세운 조그마한 경당에 마음이 끌렸다. 누더기를 입으신채 미소를 띠우시며 조용히 숨을 거두셨을 성인의 모습을 머리 속에 그리며 조용히 기도 하였다.
『주여 저도 사제가 되었으니 사제로 이 성인처럼 죽게하여 주소서. 그동안 잘못한 것도 많고 그동안 못할 짓도 많이 했지만 그리고 앞으로도 감히 절대로 되풀이 하지 않겠다고는 장담하지 못하지만 어차피 사제가 된 이몸, 사제로 세상을 마치게 허락하소서. 이제까지 그랬듯 앞으로도 혹시 당신께 무례하게 대들고「속았다」고 고함치고「물려달라」떼쓰고「난간다」며손을 흔들려 해도 그것은 이제까지 그랬듯 순간의 충동일 뿐일 겁니다. 주여 저를 사제로 죽게 하소서. 끝까지 노력해 보리이다』그런데 곧 기도의 분위기는 깨졌다. 한 무리가 들어와서는 기타치고 탬버린에 트라이앵글까지 동원해서 그리고는 요란한 박수소리와 제스츄어 속에 미사를 드리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눈이 휘둥그레져 물으니 그날이 마침 이태리 성령운동 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두주간의 묵상회를 마치고 끝나는 날이라 함께 기념미사를 한다는 것이었다.
한참 정신없이 미사를 구경하며보니 주례 신부와 참례자를 간에 호흡이 짝짝 맞아 그것은 참 부러웠지만 하느님 백성의 전례적 모임인지 어느 일반 단체의 단합대회인지 구별이 어려워 그날도 슬그머니 다른 곳으로 발을 옮겼다. 조용한 곳에서 말씀하시는 주님의 말씀을 이런 성지에서는 들을 수 없으니···어디로 갈까 하고 생각하다가 되 돌아온 곳은 바로 내가 사는 방이었다. 왁자 지껄하는 소리도, 기타에 맞추어 손뼉치며 흥얼대는 무리들의 흥분된 소리로 들리지 않는 조용한 장소가 바로 이곳이었다. 하루를 조용히 보낼려면 성지로 갈 것이 아니라 방문을 굳게 잠그고 평화로운 마음으로 벽을 마주하고 편안한 자세로 앉아 옛날 사무엘이『야훼여, 말씀하십시오, 종이 듣고 있습니다』 (사무엘상 3ㆍ10) 하고 야훼의 말씀을 기다렸듯 고요한 마음 속에서만 말씀하시는 주님의 말씀을 여기서 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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