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리 말배우러 학원에 다닐때 그곳 본당 신부가 하루는「루르드」를 순례가자고 제의했다. 루르드에 가기 위해 회원들을 모집했었는데 마침 어느 신자가 갑자기 갈 수 없는 사정이 생긴 모양이었다. 그러지 않아도 무슨 생명의 말씀이나 된다고 이태리 말을 배운다며 이교실 저교실 뛰어다니며 비지땀 숙에 한 여름을 지냈는데도 백치 아다다인지 도대체가 입을 열면 반벙어리요, 길에 나가면 귀머거리 신세라 누구에게라도 신세타령을 좀 하고 싶은 터인데 루르드에 가서 성모님께 하자꾸나 하며 쾌히 승락하였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서는 루르드에 가기도 전에 먼저 푸념이 시작되었다. 『10대때도 공부고, 20대때도 공부고, 30대때도 공부인데 그것도 이제 시작일뿐이니 언제까지 이러고만 있어야 합니까』하얀 벽이 웃으며 답하기를『누가 한다고 먼저 이야길 꺼냈는데?』더 이상 아무 소리 못하고 루르드 순례를 기대하며 또 책상 머리에 앉았다. 루르드에 도착하니 이태리에서는 맛보지 못하던 분위기가 대번 엄습해왔다.
그것은 기도의 분위기였다. 성당에서 이야기하는 사람은 더이상 찾을 수 없었고 광장에서 조차 몸가짐을 바르게 했다. 그리고 모두가 열심히 기도하고 있었다.
하늘과 땅이 화합하며 아베마리아의 기도소리와 함께 천지에 울려퍼지는 기분이었다. 루르드에는 물론 성모님께서 발현하셨다는 동굴이 유명하지만 매일하는 성체강복과 촛불행렬이 인상적이었다.특히 촛불을 밝혀들고 묵주기도를 하며 광장을 돌때는 인생이 어차피 이러한 순례의 길일진대 주님께 점점 가까이 나아가는 지금 나의 촛불은 어떤 상태일까 생각하며 공연히 손에든 촛불을 쳐다보게 되었다. 그 촛불이야 잘타고있지만 삶의 촛불이 불충하여 막상 신랑이 오실때 기름을 사러 가야하는 미련한 처녀(마태 25·10)처럼 되지나 않을까 묵상도 했다.
동굴앞에 가서는 먼저 조국과 우리 신자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성모님 우리들은 우리 민족과 당신을 연결지어 생각하기를 좋아합니다. 당신의 크신 축일에 우리가 해방되기도 했고 우리나라를 당신께 봉헌한 적도 있읍니다. 그리고 아시는 것처럼 우리나라의 신자들이 당신께 대한 신심은 매우 놀랍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제자신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우리 조국과 우리 신자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싶습니다. 이곳을 오고 싶어하는 무수한 우리 신자들을 대신해서 기도하오니 그들의 모든 기도를 주님께잘 전구하여 주십시오. 그리고 우리 조국을 잘 보호하여 주십시오』어느새 시간은 상당히 흘렀다.
루르드의 물을 한컵만 마실까 하다가 이물을 마시고 싶어하는 한국의 신자들을 위해 다른 방법은 없고 대신 서너컵을 연거푸 마셨다. 처음에 의도한 신세타령은 아예 떠오르지 않고 감사할 뿐이었다. 동굴은 대구 성모당에서 본것과 거의 같은데 성모상 아래의 바윗돌은 수많은 사람들의 손길과 키스로 반딧돌척럼 반들거렸다. 아직도 기적이 일어난듯 필요없게 된 목발이며 내던져진 지팡이들이 성모님의 위력을 말해주는 듯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의 수가 날로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오는 사람마다 기도 분위기에 휩싸여 경건한 마음으로 기도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가지 확실한 것은 이러한 분위기가 아무리 좋고 성지에 몇번이고 간다해도 마음의 변화가 없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점인 것이다. 마음의 변화란 곧 하느님 은총의 작용이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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