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교회사의 귀중한 자료인「黃金十字架」가 도난당해 행방이 묘연하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솔직이 말해서 우리에겐 부끄러운 소식이다. 우리의 유산을 우리가 간직하지 못했다는 부끄러움, 아니 그러한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는 부끄러움이다. 사실 이러한 소식을 듣고 누구보다도 먼저 놀람과 격분을 금치 못해야할 사람은 우리 자신이 아니고 누구이겠는가. 왜냐하면 잃어버린 黃金십자가는 값진 硫物인 동시에 한국 천주교회사가 남긴 유산이었기 때문이다.
이 유물의 유래는 임진 왜란때 조선에 왔던 세스페데스 신부가 조선진 중에서 분실하였을 것으로 전해지고있다.
과연 그것이 세스페데스 신부의 소유물이 었느냐에는 이론이 없지 않다. 西山大師가 중국에 유학 했을때 그곳 선교사로 부터 선물로 받아온 것이라는 의견도 있고, 임란으로 끌려간 포로들의 송환교섭을 위해 일본에 건너갔던 한 스님이 그곳 선교사로부터 선물로 받아온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이러한 여러 의견중 역시 세스페데스 신부가 조선진중에서 분실한 것이 결국 서산대사의 손에 들어가게 되었다는 설이 가장 개연성이 있는 것이다. 서산대사는 그것을 소중히 간직하고 유물로 남겼다. 그후 이십자가는 서산대사의 유언에 따라 그의 다른 유물들과 함께 전남 大輿寺에 소중하게 보관되어 오던 중 지난 74년 도난을 당했다는 것이다.
십자가는 도난에 그치지 않고 또 수난을 겪어야 했다. 즉 황금에 눈이 어두운 한 상인이 그속의 금이 탐이 나서 녹여버렸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금값보다는 골동품으로 더 가치가 있었다는 사실로 미루어 黃金십자가의 鎔解 운운은 선뜩 납득이 가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십자가가 한국 어디엔가 아직 보존돼 있기를, 그리고 하루빨리 주인의 품으로 돌아오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십자가가 도난 당하기 전에 교회측은 인수 교섭을 몇번인가 했었으나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고 한다. 실패의 원인이 나변에 있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결국 문화재에 대한 인식면에서 불교측이 천주교측 보다 훨씬 앞서있은 때문이었다고 풀이해도 무리는 아닐 것 같다.
기억상실증이란 말이 적절한 표현이 될런지는 모르나 어쨌든 한국 천주교는 자기유산에 대해 기억상실증에 걸려 있지 않나 하는 느낌이다. 이 기억상실증으로 말미암아 한국천주교는 초기교회의 유산을 술하게 잊어먹었다. 가깝게는 1920~30년대의 유산마저 적지않게 잊어 먹었다.
몇가지 예를 든다면 그때만 해도 한국교회는 새남터가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사이 새남터는 한국교회의 기억에서 흐려지고 말았다. 또한 그때만 해도 순교복자 丁夏祥의 산소가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그의 산소를 기억하고 있는 이는 아무도 없다. 그 뿐인가. 1931년 조선교구 설정 1백주년 기념 전시회에 출품되었던「기해일기」와 薺嗣永의「假帛書」가 어느 사이에 행방을 감추었으나 한국교회는 그러한 사실조차 모르고 있다.
만일 薺嗣永의 진짜 帛書가 1925년 79위 시복식을 계기로 교황 성하에게 증정되지 않았더라면 그것이 과연 한국교회에 계속 보존되어 왔을까 한번 자문해 볼 만한 문제이다. 1966년 병인박해 백주년을 맞아 한국교회 일부에서 교황청에 백서의 확실한 소장처를 문의한 일이 있었다. 그때 백서를 발견하지 못한 교황청은 몹시 당황하였다. 그러나 5년간 끈질기게 추적한 끝에 결국 찾아내고야 말았다. 그래서 작년 교황청을 방문한 우리 주교님들은 백서를 직접 목격할 수 있었다. 傳聞한 바에 의하면 그때 백서 반환에 관한 얘기가 오갔다고 하는데, 이에 대해 교황청의 한 직원은 한국보다는 여기서 보관하는 것이 더 안전하지 않겠느냐고 대답하였다는 것이다. 무의식적으로 한말이겠으나 듣는 이에게는 모욕이 될 수 있는 말이다. 그러나 사실 우리는 그러한 모욕을 감수해야 할 부끄러운 현실 속에 살고있는 것은 아닐까.
한국이 세계 앞에 자랑할 수 있는 것은 한국의 정치도 경제도 아니요, 한국의 문화요 그 문화재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한국교회도 세계교회 앞에 자랑할 것이 있다면 그의 특이한 역사와 그것을 입증하는 전통유산 뿐 일 것이다. 이런 뜻에서 한국교회의 유산의 상실은 다름 아닌 고유한 한국교회사의 상실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제 한국교회는 교회 문화재에 대한 인식을 높임으로써 더이상의 유산의 상실로 인한 자기자신의 상실을 막아야할 때가 왔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우선 黃金십자가의 손실을 바로 우리교회의 손실로 뼈아프게 느껴야 할 것이고, 동시에 그것은 결코 남의 탓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탓이었다는 사실을 반성해야 할 것이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