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商術의 鬼才들이라고 일컬어 지는 유태인들과 商術을 나눌때엔 잊어서는 안될 禁忌가 있다고 한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상에서의 釘死에 관한 질문은 절대로 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 祖上들의 아픔을 건드리는 이 질문이 유태인들에겐 참을 수 없는 모욕으로 받아들여지는 모양이다. 人間的인 幻想이 무너지자, 매우하기 그지없는 짓을 犯한 祖上들의 處事가 두고두고 그들 後孫들에게 까지 치욕적인 기억으로 남아있는 것이다. ▲그러나 유태인 조상들의 어리석은 處事를 두고 우리 모두가 함께 비웃을 수가 있겠는지 냉정히 생각해볼 문제이다. 소위 신앙인들이라고 하는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의 福音을 믿고 따르기로 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우리 스스로가 邪惡한 말과 행위로 오늘도 그리스도를 못박고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지나 않는지?. 2천년을 두고 유태인들은 괴롭혀온 그들 조상의 惡夢같은 愚行을 오늘날 우리 스스로는 犯하고 있지 않는지 反省해볼 일이다. ▲지극히 現世的이고 人間的인 판단으로만 본다면 그리스도 부활의 神秘는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던使徙 토마마저도 믿기 힘들어 했던 이 神秘를 2천년이 지난 오늘날 쉽게 믿을 수 없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는 復活의 믿음을 찾아 聖敎會의 문턱을 들어섰고, 復活의 믿음이 있기에 永生에의 希望을 갖고 있지 않는가. ▲言必稱만물의 靈長이라고 自處하는 인간은 잔신들의 얄팍한 지혜를 過信하는 경향이 없지않다. 그러나 한치앞도 내다 보지못하는 人間, 더구나 언제, 어떻게 닥칠지도 모룰 죽음앞에 선 人間은 其實 초라히기 짝이 없는 存在이다. 인간으로서 숙명적으로 맞아야하는 죽음 앞에서도 만약 復活에의 확고한 믿음만 있다면 超然할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많은 先人들의 죽음을 통해 보아왔다. ▲예수 復활의 神秘는 오늘날 우리가 겪고 있는 숱한 苦痛은 물론, 두려움의 대상인 죽음의 참 意味까지도 깨닫게 해준다. 十字架上에서 돌아가시면서까지 人間을 사랑하신 예수, 그리고는 마침내 그의 復活로 우리 모두에게 永生에의 希望을 주신 그리스도를 默想하며 이 復活節을 맞아야겠다. 우리 모두가 復活의 믿음속에 살때, 우리의 삶은 곧 福音적 삶이 될 것이고, 이것은 곧 희망과 躍動, 그리고 歡喜의 삶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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