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릉도를 뱀과 거지와 도둑이 없다고 삼무(三無)의 섬이라 부른다. 어찌 없는 것이 그뿐이랴 마는 사람들이 귀찮아하고 싫어하는 존재들만을 먼저 생각하다 보니까 그렇게 손가락을 세개만 꼽는 모양이다.
뱀은 토질이 맞지 않는지 가져다 길러봐도 죽어버리고 산에 나물이 뜯거나 오징어를 잡으면 되니까 거지도 없고, 훔쳐봐야 배를 타기전 검문검색을 당하기에 도둑도 없다.
그러나 요즘들어 간혹 좀 도둑은 생긴 모양이다. 현금과 간단한 귀중품들을 잃었다는 소리가 심심찮게 들린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문단속에 조금씩 신경을 쓰기 시작한다. 견물생심의 심리를 경계하자는 것이다.
나도 사제관이 방문을 잠그기로 했다. 내 방에 뭐 대단한 보물이나 현금 다발들이 쌓여 있어서가 아니라 카메라 때문이다. 울릉도의 풍경을 촬영하느라 슬금슬글 마련한 기재들이 어느덧 한 가방을 채우게 되었기 때문이다.
다 팔아봐야 몇푼 안되는 것이긴 하나 나에게는 꽤 소중하다. 이것도 역시 물건에 대한 애착일거야. 레미제라불에 나오는사목자처럼 불법 수사관인 도선생님께 여기 있는 것은 모두 당신의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카메라에 대해서만은 선뜻 마음 내키질 않는걸 보니까 나도 어지간히 한심한 사제로 살아가나 보다.
이것도 포기해야 될텐데. 그러나 나대로 쉽게 포기 못할 몇가지 이유는 있다. 왜냐하면 나의 사정으로 포기하고도 다시 구할 능력이 극히 어렵기 때문이고, 또한 카메라는 사목의 연장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카메라는 만년필과도 같이 사실을 생생히 기록한다.
또한 하느님의 위대한 작품을 고스란히 담아 전할 수 있는 도구이다.
작년 여름 울릉도의 수해는 비록 매스콤에서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심각하였다. 산이 무너지고 집이 묻히고 사람들이 셋이나 죽었다. 40여호가 졸지에 수재민이 되었다.
즉시 현지에 가서 촬영을 하고 밤새워 현상 확대하여 게시판에 붙이고서 그들을 돕자고 호소한 결과 내 어설픔 말재주고는 도저히 바랄 수도 없는 효과를 낸 적이 있다.
또한 관광지에서는 카메라가 사목상 꼭 필요한 물건이라고 생각된다.
올해 울릉도 관광객 예상숫자가 10만인데 그중 3%가 천주교 신자라면 3천은 된다. 그들도 대개「날 보러 와요」식의 유행가를 고성으로 들여놓는 유람선을 타고 한바퀴 휙 둘러보고는 가버린다. 2박 3일의 귀한 일정을 신앙상 별 큰 도움없이 들뜬 기분으로 가고 만다.
이들에게 좀 유익한 일이 없을까 생각끝에 도동본당 뒷산에 세워진 성모상 계단이 눈에 들어왔고 그 난간을 대형묵주로 갈아 놓았다. 그러니 할머니들도 곧잘 묵주 기도를하며 바다가 보이는 성모상까지 오른다. 30여m의 묵주이니 세계최대의 묵주이리라.
그리고 이번 여름에는 매일저녁 미사후 슬라이드 감상회를 열어 사람들을 모아 불까한다. 성당 문턱을 높게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조그마한 계기라도 되었으면 해서이다. 그리고 카메라도 욕심을 좀 낸다면 경치사진으로 공소설립 기금이라고도 좀 모았으면싶다. 사진들이 날개 돋힌듯 팔리고 통장에 숫자가 계량기 돌아가듯 올라가면 저동과 남양에 공소를 사야지. 그러면 냉담자들도 좀찾아 올거야 이런 생각들을 하며 공소갈때는 꼭꼭 카메라를 메고 나간다.
『아저씨, 증명사진 하나 박아주고 가소』. 아뿔싸 이러다간 사진관이라도 차려야겠네. 지나가던 아주머니가 나를 사진사로 오인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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