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관에서 창밖을 내다보면 도동항과 함께 절벽끝에 서있는 2천년 향나무가 시야에 들어온다. 엄청난 비바람을 수없이 겪고서도 그토록 오랬동안 그지리에 버티어 서있다. 가파른 절벽끝 바위틈에 사는 나무라 별로 올라가는 사람도 없거니와 요즘은 못올라가게 철조망까지 쳐놓았다. 지난 여름 태풍이 불었을때 많은 나무가 부러지고 성당지붕이 날라 갈 지경이었는데도 그 향나무는 끄떡없이 서있었다.
하도 신비스러워서 몇몇 청년들과 하루는 유격훈련 겸 카메라를 매고 올라가 보았다. 아슬아슬한 고비를 몇번 넘기고 그향나무에 다가갔을때 내심장은 심하게 두근거렸다. 굽이치며 비틀린 동치와 뿌리를 보았을때 마치도 2천년 비바람치는 세월이 나를 온몸 휘감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처럼 오래된 나무는 육지에서도 많이 볼 수가 있겠지만 이 향나무와는 전혀 처지가 다르다.
아름드리 굵은 뿌리가 흙도 아닌틈에 박혀있기 때문이다. 무진장 고생하며 살아온 이 향나무를 보고 얼핏 2천년 가톨릭 교회의 모습이 생각나는 것은 내가 신부이기 때문일까. 시몬 베드로라는 바위 위에 서있는 교회, 씨가 뿌려지면서 부터 폴군들의 태풍같은 박해 속에서도 꿋꿋하게 뿌리내려 온 교회의 모습이 그 향나무에 새겨진 듯 한다.
향나무는 그윽한 향기를 품은 나무이기에 제사 때의 분향목으로도 쓰인다. 또한 벌레먹지 않고 단단하여 귀한 가구로도 쓰인다.
평지에서 순탄하게 자란 향나무는 아무리 굵어도 절벽끝에서 고생하며 자란 향나무만 못하다. 고생을 많이한 향나무는 결이 붉고 향기가 진하게 풍기기 때문이다.
향나무가 이날까지 서있을 수 있는 비밀을 내나름대로 생각해 본다. 커다란 절망의 바위덩이 위에서 오로지 하느님의 손길만을 바위덩이보다 더 크게 믿으며 뿌리 내리는 일에 전심하였을 것이다. 뿌리내리는 데에는 부정이나 부패 속임수가 통할리가 없다. 썩은 뿌리는 즉시 바람의 심판을 받기 때문이다. 조금씩 조금씩 연약한 뿌리로 피나게 파고 드는 길, 다이너마이트도 없이 맨살로 절망의 바위를 파고드는 일에 전력을 기울였으리라. 걸으로 들어나는 잎과 가지와 열매를 내세우지 않고 오로지 뿌리내리는 일에만 골몰하였으리라. 만일 잎과 가지에 치중하였더라면 벌써 견뎌지질 못했으리라.
내가 서있는 곳에 바람이 분다. 그러나 세상의 부정ㆍ부패, 허위를 뒤집어 놓은 심판의 바람은 아니다. 그러기에 온갖 얄판한 권모술수들이 제세상을 만난듯 없적을 내세우고 허위를 숨기며 살아 갈 수가 있다.
그러나 향나무는 알고 있는 것 같다.
오늘의 바람이 비록 미미하여 심판의 바람이 없는 듯 보일지라도 언젠가 마지막 세찬 바람이 밀려오면 세상의 뿌리없는 것들이 무너지리라는 것을. 그러면서 노아가 방주를 만드는 심정으로 뿌리내리는 일에만 전념하는 것 같다. 목숨에 꼭 필요한 잎과 가지만 가지고서 오로지 뿌리내리는 일에만 몰두하며 모든 수난을 통해 향기를 머금는 일.죽어서 더 많은 향기를 내는 향나무는 우리에게 부활의 뜻을 가르치는 것 같다.
정직하게 뿌리내리는 일, 그리고 필요하 것만 가지고 나머지는 모두 하늘에 말겨버리는 것. 이것이 가장 오래가는 비결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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