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맹학교의 2백명 남짓한 전교생 가운데 약 절반 정도가 종교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그중의 대부분은 개신교 계통의 신자들이고, 불교와 가톨릭신자가 그 뒤를 잇는다. 개신교 계통의 신자가 많은것은 물론 다른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국공립을 제외한 전국 대부분의 맹인교육시설 또는 수용시설이 개신교 계통의 재단에 의해서 운영되고 있는 것에 크게 기인하지 않나 생각된다.
그러나 나의 영세를 전후하여 맹학교에 가톨릭 신자는 부쩍 늘어 이럭저럭 한 20명을 헤아리게 되었다. 일이 이쯤되고 보니까 우리들은 욕심이 생겼다. 여럿이 힘을 합쳐 신심단체를 구성하면 우리의 신앙생활이나 전교활동에 도움이 될 것같았다. 드디어 70년 그해도 저물어가는 어느날 기숙사 어느방에서, 다가오는 신학기에 정식 기구를 발족시킬 목적으로 발기위원회가 구성되었다. 그리고 우선 첫사업으로 곧 있게될 겨울방학을 이용하여 각자의 고향에서 점자 성가집 제작을 위한 모금활동을 전개하기로 결의하였다. 그러나 개학후 전국에서 올라온 모금품을 한곳에 모았을 때의 결과가 말해주듯 제아무리 뜻이 좋은 모금활동이라 하더라도 개인 개인이 본당이나 수녀원 문간에서 구걸을 하는것과 같은 방식으로는 불가능한 것임을 우리는 체험을 통해서 깨달았다.
별수없이 우리의 주머니를 털지 않으면 안되었다. 점자의 인쇄는 우선 두겹으로 접힌 알루미늄판에 제판기로 점자를 찍고(원판)그원판 사이에 점자지(주로1백 20모조지를 사용)를 끼우고, 두개가 맞물려서 돌아가는 로울러 사이를 지나가게 하면 종이에 점자가 찍혀 나오는 것이다.
우리는 우선 알루미늄판을 사고, 그것을 점자 인쇄소에 의뢰해서 원판을 제작케 했다. 일단 원판이 완성되자 우리들은 종이를 사다가 수업이 끝난 시간을 이용해서 우선 60부를 인쇄하기로 했다. 전국에 그것을 배부하려면 절대적으로 부족한 양이었지만, 원판이 시작된 만큼 필요하면 언제고 더 인쇄할 수 있는 문제이므로 우선 이정도에서 만족하기로 했다.
인쇄가 끝나자 이제 남은 것은 제본문제였다. 그러나 여기에와서 우리들의 주머니니는 바닥이 나고 말았다.
제본비 마련을 위하여 머리를 맞대고 궁리에 궁리를 거듭하던 우리에게 어느날 기쁜 소식이 들려왔다.
그것은 당시 대한 가톨릭 학생회 서울대교구 중고등 연합회 지도신부였던 나상조 신부님께 제본문제를 맡아 주시겠다고 나선 것이다. 이렇게 해서 국내최초의 점자 가톨릭 성가집은 그 탄생을 보았고, 그것을 한권한권 어루만지는 우리들의 감격은 이루 형언할 수 없는 것이었다. 우리들의 기쁨을 나신부님의 발간 축사에 담아 표현해 보고자 한다.
<고귀한 의자의 승리>
삶에 있어서 가장 즐거운 일은 다른 사람들이 당신에게『당신은 결코 할 수 없을 것이다』라고 하는 일을 끝내 해내는 것이다 라고 월터 바초트는 말하고 있다. 오늘 수많은 시간을 모아가며, 참담한 노력과, 끈질긴 인내속에 발간되는 점자성가 130곡은「어둠속에 촛불을 밝히는」1백여년 한국 가토릭 교회사의 개선의 팡파레이며, 그의 영원한 전진을 향한 고귀한 정신의 승리인 것이다. 불과 같은 혀와 뜨거운 입술로 내주를 찬양함은『보지 않고는 믿을 수 없다』는 그리스도의 사도 토마의 한때나마 부족한 신앙의 빛을, 그리스도 사랑의 영원한 빛을 향해 나아가는 의지의 찬란한 승리인 것이다. 이제 이러한 고귀한 정신과 굳센의지가 그 참된 열매를 맺기위해서는 보다 많이, 보다 크게 내주 찬양의 소리가 내주 사랑의 함성이 이세상에 울려퍼지는 것이다.
악을 보지않는 마음이 드리는 열절하온 기도와 정성은 무엇보다도 큰 은혜와 사랑으로 여기에 보답될 것입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기도를 듣고 계신다. 그러나 기도를 올린 사람들 중에 몇이나 하느님의 음성을 들었는가?』
이제 이점자 성가의 고귀한 열매에 정성스런 축하를 보내며 더욱더 하느님의 음성이 함께 하시기를 기도드린다.
<1971년 5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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