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는 참으로 넓기도 하다。
그넓은 공간이 온통 소금물로 가득차 있다。
넓은 그만큼 하늘을 마주 바라보고 있다。
옛부터 사람들은 바다에 인품을 즐겨 비유해왔다。
바다처럼 넓고 깊은 사람, 바다처럼 세상 사람을 포옹할 수 있는 이해심 등등 그러나 그 바다에도 갖가지 표정이 감추어져 있다。
아침의 찬란한 황금빛 물결이 보이는가 하면 한낮의 거울처럼 번쩍이는 면이 있고 밤바다는 태초의 심연을 그대로 노출하는 듯한 신비스러움이 있다。
조용하고 평화스럽던 바다에 모진 태풍이 오면 산더미 같은 파도가 일어난다。
바다의 파도는 아무도 걷잡을 수가 없다。
인간이 아무리 큰배를 만든다해도 그 바다앞에는 한낱 가랑잎일 따름이다。
바다를 가까이 하면 인간이 얼마나 미약한 존재인가를 깨닫게 된다。
도회지의 시멘트와 석유냄새에 저려진 사람들은 때때로 바다를 동경하기도 하지만 머지않아 그 단조로움 앞에 견디어내지 못한다。
바다는 참으로 단조롭다。
아무것도 없이 그냥 일직선으로 죽 그어진 수평선 앞에 입을 다문채 자연이 주는 그 침묵속으로 몰입해 본다。 갖가지 소음에 길들여진 나에게 그 바다의 침묵은 지겹고 두렵기까지 하다。
「나와 함께 한시간도 깨어있지 못하느냐」는 올리브 동산의 주님 말씀은 끝없어 보이는 침묵과 단조로움앞에서 산만해지는 우리의 정신을 경고하시는 말씀이다。
일어나 해변을 거닐어본다。
갈매기 울음과 파도。
이것들이 나에게 무슨 이야기를 해오는가。
바다위에서나 하늘에서나 마음대로 앉고 나를 수 있는 갈매기는「자유」를 이야기 한다。
그리고 의연히 버티고서 소금물 흠뻑 뒤집어 쓰곤 하는 바위는 끝없이 회개하는 영혼의 화신이다. 해변에는 많은 유리조각들이 흩어져 있다。
사람들이 마시고 버린 소주병, 콜라병 조각들이다。
그중 하나를 주어들여다 본다。
오래전에 버려진 것인지 칼날같은 면이 닳고 닳아 둥글게 되어 있다。
또 다른것을 주어 본다。
이건 버려진지 얼마 안된 모양이다。
뾰족한 면이 그대로 살아있다。
아무리 살기를 품은 병조각이라도 파도에 오래 닳으면 자갈처럼 부드러워지는 법인가。
바다는 상처를 쉽게 아물게한다。
변치 않는 소금물의 소독기운은 우리의 마음에 입은 상처를 아물게도 한다。
그냥 파도소리에 마음을 내맡겨두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 아픔을 잊게 된다
「수고하고 짐진자 내게로 오라」고 끊임없이 부르는 주님의 목소리인양 신기하게 그 파도소리에 아물어 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아주 단순한 움직임, 밀려왔다가 밀려가고 또다시 밀려오고 물러가는 파도의 치유동작。
그것은 결코 얄팍한 재주로 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의 파도가 해변에 밀려오기 위해서는 수만리 먼 바다에서의 움직임이 연결되어 있음으로 가능하다。
또한 하늘의 사정과 무관할 수가 없다。
바람 한점 우주의 움직임이 곁들인 결과에서 비롯된 파도이요 치유동작이다。
일제히 갈퀴를 세우고 물려오는 파도를 바라보면서 말없는 바다의 저력을 본다。
그것은 말없는 서민들이 침묵을 깨뜨리고 일어나는 함성과도 같다。
바로 그때가 침묵이 위대한 응변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