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봄, ○○당소속 국회의원 후보의 부인이 유세차 서울을 떠나 남편의 본고장인 ○○에도 갔을때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 부인은 집에서고 거리에서고 만나는 사람마다 남편 이름을 대면서 잘 부탁한다고 코가 땅에 닿도록 인사하기에 정신이 없었다고 했다. 한날은 아주 좁은 골목에서 리어카에 연탄을 가득 싣고오는 얼굴이 까만 50대의 남자와 마주쳤는데 그때에도 습관처럼 절을 하면서 아무개의 내자라고 자기를 소개하자 그는 벌컥 성을 내면서 눈을 부릅뜨더란다.『제기랄 지금 먹구 살기두 바쁜데 국회의원이구 나발이구 내가 알게 뭐야, 어서 저리 비켜요』전혀 예기치 못했던 말을 듣자 주위사람들 보기에 창피하기도 하고 가슴이 두근거려 뒤도 안돌아다 보고 도망쳤다고 그 부인은 말했다.
몇 달이 지난 지금 사모님이 된 그 부인이나 여의도 푹신한 의자에 등을 기대고 앉은 남편이 가끔 강원도의 이름 모르는 연탄 배달부의 고함 소리를 기억하고 있는지는 의문이지만 불행하게도 벌써 까마득하게 잊어버렸다면 문제는 매우 심각하다. 예부터 우리나라에서는-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지만-다수의 무식하고 가난한 서민들을 발판으로 삼아 그 위에 우뚝 선 소수의 양반들이 행세해 왔다. 다시 말해서 서민들 덕분에, 서민들에 의해서 양반들이 행세를 할 수 있었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반들이 자기들을 떠받치고 있는 서민들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튼튼하리라고 믿는 발판이 미구에 허물어지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발판이 허물어지면 양반들은 어느 곳에 또 설 자리를 마련할 수 있을까. 문제는 또 한가지가 있다.
추측하건대 그 연탄 배달부의 생각은 다음 몇가지일 가능성이 있겠다. 첫째 누가 국회의원이 되든지 연탄이나 나르는 나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생각, 둘째 세상만사가 다 귀찮다는 생각 등이 그것이다.
그럴리야 없겠지만 만약에 우리 가난한 서민들의 생각이 대부분 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 대한 1차적인 양반들의 책임못지 않게 서민들의 책임도 작지 않다. 만에 하나라도 그렇다면 구체적인 인간의 행복을 위하여 일하는 양반들의 없을 수 없는 실수나 잘못을 누가 지적, 시정해 주겠는가. 조상 탓으로 못배워서 무식하다는 것이 금화 몇 개씩을 맡기고 우리 곁을 잠시 떠나신 그분에게 타당한 변명이될까.
우리 성당은 대도시의 제일 끝 변두리에 자리잡고 있다.
그야말로 여러가지 탓으로 인하여 학교공부를 제대로 못한 사람들이 허다하다.
그래서 궁리궁리 끝에 지난 6월부터 현직 중ㆍ고등학교 교사 6명의 도움을 받아 야간학교를 시작했다. 그러나 이게 웬일인가. 처음에 등록했던 22명의 학생들이 점점 줄어 한달이 조금 지난 지금은 겨우 대여섯명 밖에 안남았다.
공부하기도 생각하기도 싫어하는 사람들. 물론 그들도 나와 한핏줄을 지닌 한 형제임을 생각할 때 애틋한 정이 안가는 것은 아니지만 매일 저녁 2시간씩 공부도 하지 못할 만큼 당장 생계의 위협을 받는 사람들이 아님을 뻔히 알고 있는 터이니 더욱 더 울화가 치민다. 지금이 옛날이라면 우리 야학에 학생이 줄어든다는 말을 듣고 양반들은 무척 좋아하겠지. 이런 상황에서 신부인 나는 오는 주일 강단에서 또 무엇을 강론해야 될까. 그러나 희망은 있다. 대여섯명의 학생을 위하여 날마다 50리 먼길을 땀흐리며 찾아오는 선생님들이 있으니까. ……
지금까지 대구대교구 울릉도 도동 본당 주임이신 윤임규 신부님께서 수고해주셨습니다. 이번호부터는 인천교구 고잔 주임 호인수 신부님께서 집필해 주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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