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 두 살 먹은 재구는 우리 성당 주일학교 교리 선생님이다. 젊은 나이에 10명의 선생님들과 1백50여명의 학생들을 얼마나 잘 이끌어 나가는지 수녀님도 없는 우리 성당에 없어서는 안될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그 재구가 며칠 전에 논에 농약을 주다가 그만 중독이 되어 인천 기독병원 중환자실에 입원을 했다. 어린이 방학교리라는 연중 가장 큰 행사를 며칠 앞두고 재구가 쓰러졌으니 어찌면 좋으냐고 고만고만한 나이 또래의 교리 선생님들이 모두 울상이다.
보호자까지도 면회가 안된다는 중환자실에 신부라는 끝발(?)로 재구를 만나러 들어갔다가 나는 아연실색을 하고 말았다. 팔뚝에 주사바늘을 꽂고 조용히 누워 있을 것이라고 추측했던 재구가 나를 보자마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앉으며 엉뚱한 헛소리를 하는것이 아닌가 『신부님, 망둥이 잡으러 갈준비가 다 됐으니까 얼른 가셔야죠』병원 침대에 누워있는 처지에 망둥이를 잡으러 가자니, 틀림없이 재구는 정신이상이 된 것이다. 나는 분주하게 왔다갔다하는 간호원 하나를 붙잡고 다급하게 물었다. 『아니, 이 환자가 왜 이럽니까? 정신이상이 된게 아닌가요?』다행히도 친절하게 답을 해주는 간호원의 말을 듣고서야 나는 겨우 안심할 수가 있었다. 간호원의 말 인즉 농약중독환자는 농약성분을 중화시키는 주사를 주는데 그 주사를 맞으면 얼마동안 정신이 오락가락하니 너무 걱정말라는 것이었다. 간호원은 상냥하게 웃으면서 덧붙였다.『이 환자는 아주 독실한 신도인 가 봐요. 계속해서 성당 이야기만 하니까요』나는 순간 가슴이 메어지는 듯했다.
재구가 빨리 농약주는 일을 끝내 놓고 방학교리 준비를 해야 한다면서 이틀을 계속 일하다가 쓰러졌다는 재구어머니의 말을 들을때도 꼭 무슨 죄를 짓고 있는 듯한 느낌이 더니, 정신이 혼미해져서 나오는 헛소리까지도 온통 성당이야기 뿐이라는 간호원의 말은 더욱더 내 가슴깊이 아프게 파고 들었다. 과연 내가 재구처럼 눕게 된다면 나도 시종일관 교회일에 관한 헛소리만 할거인가? 글쎄, 자신이 없다.
생각해 보면 주일학교 선생님들만큼 어려움도 마다않고 교회와 사회를 위하여 봉사하는 사람들도 흔치 않은듯 하다.
하느님 사업에 이해타산을 앞세운다는 것은 돼먹지 못한것이라 하더라도 살림이나 학비에 도움이 되는 수고비를 받는것도 아니요. 일반학교의 교사들처럼 학부모들로부터 수고한다는 위로의 말조차 얻어들지 못하면서 자기 손수건으로 코흘리개 아이들의 코를 닦아주는 교리선생님들의 모습은 성스럽기까지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도 신부이니까 당연히 그래도 되는것처럼 그들에게 희생과 봉사만을 강요해 왔다. 그래서 교회는 염치도 없고 비인간적이고 따뜻함이 결여되어 있다는 비판을 사회로부터 받는것이 아닐까.
열아홉살 먹는 보심이는 주일마다 서울에서 3시간씩이나 차를 타고 주일학교를 위하여 우리 성당에 온다. 복심이의 힘들어하는 모습이 안타까와서 그말을 하지 못하는 것은 무엇때문일까. 올 여름방학교리 때는 작년처럼 변소에 빠져서 질질우는 어린이를 교리 선생님이기때문에 시집도 안간 처녀의 몸으로 목욕시켜야 하는 웃지 못할 일들은 없었으면 좋겠다.
한번 농약에 중독되면 이후로 계속해서 몸이 좋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모든 교리선생님들의 순수한 희생과 사랑이 어린이들에게 그대로 전해져도 오늘 같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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