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리회」라고 하면 웬만한 신자들치고 이를 모르는 이가 거의 없다. 그러나 金光子 여사를 아는 사람은 극히 드문것 같다. 그가 연약한 여자의 몸으로 한국 최재의 구라후원단체인 「릴리회」를 이땅에 심은 주인돌이란 사실은 거의 묻혀왔던 것이다. 「릴리회」의 화려한 발전상이나 年間실적은 매년 널리알려져 왔으나 정작 이를 심은 본인은 끝내 세상에 드러나기를 사양 하는 겸손된 자세를 堅持해 왔다. ▲ 철저하게 자신을 낮추고 살아온 金여사였기에 심지어 본당신부 조차도 그가 한국구라사업에 엄청난 발자욱을 남긴 사람이란 사실을 몰랐을 정도였다. 자신의 영혼을 하느님께 맡기고 간후 그의 장례미사때 비로소 놀랐다는 것이다. 자칫 꺾이려는 자신을 쉬지 않고 채찍질하며 김여사는 드러나지 않는 가운데 조용히 이 엄청난 일을 밀고 나갔던 것이다.
▲ 우연한 나환자촌 방문길에 그들의 참상을 보고 괴로와했던 金여사, 그리하여 나환자들도 인간다운 삶을누릴 權利가 있고, 이를 위해서는 육신이 성한 우리가 무엇인가 보탬이 되지 않으면 안된다고 부르짖고 나선 金여사ㅡ이제 그의 뜨거운 사라은 가지를 치고 열매를 맺어 「릴리회」란 탐스런 열매가 알알이 영글어가고 있는 것이다. ▲ 인간적인 측면에서만 본다면 그의 42년이란 짦은생애는 행복했다고만은 할 수 없다. 남달리 일찍 직업전선에 나서야 할 정도로 경제적으로도 윤택하지 못했을 뿐더러, 남모르는 외로운 결혼생활을 체험했어야 했고, 술하에 자식하나 없이 한창 나이에 直腹癌이란 병마와 싸워야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의 해맑은 미소뒤에 감추어진 이숱한 인간적인 고뇌는 가까운 親知들까지도 아는 이가 거의 없다. ▲ 이런한 가운데 서도 그는 자신보다는 다른이의 고통에 더욱 마음 아파했고, 자신을 아끼지 보다는 다른이의 행복을 위해 온 정열을 쏟았다. 그自身 역경을 헤쳐나가야 했던 金여사였기에 나환자들에 대한 그의 사랑은 어쩌면 뼈를 깎는 아픔의 결정이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그의 업적을 더욱 기리고 그의 뜻을 더욱 소중히 여기는 소이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이제 이름없는 한여인 金光子 여사는 갔다. 그러나 그가 남긴 헌신적 사랑의 열매는 더욱 크고 영통한 빛을 발하게 될 것이다. 故人의 명복을 빈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