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보는 지난호 5면에서 안동교구의 함창본당 중고생 108명과 서울대교구 돈암동본당 중고생 200여명이 상주군 양정면 영수국민학교에서 지난 7월 29일부터 3박 4일간 합동산학교를 개설하여 농촌과 도시, 교구와 교구안에 상호 형제애을 나눔으로써 큰 성과를 거두었다는 흐뭇한 기사를 보도한바 있다. 이결실은 지난해 11월에 이미 돈암동 본당에서 함창본당 고 2생 45명을 서울에 초청한바 있었으며 그 당시 다음해에는 안동교구의 초청으로 함창서 만나자고 다짐한데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번 합동 산간학교에서는 「주께서 당신과 함께」를 주제로 하여 그리스도 안의 한 형제로서의 초대와 농촌에 대한 기대가 어우러진 가운데 서울 학생들이 농촌 활동을 펴기까지 하였으며 서로간의 깊은 사귐을 통하여 형제애로 일치하는 기쁨과 감사로 이어진 일정을 보냈다고 하는바 이 사실을 매우 높이 평가하지 않을수 없다. 왜냐하면 단순한 산간학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는 지금 교회사적인 면에서 새로운 시대인 공의회 이후 (Post council) 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공의회 이후를 살고 있다는 말은 공의회의 정신과 가르침을 우리 교회가 하루속히 구현해가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우리 인간은 모두 형제입니다』(마태오 20ㆍ8) 그리고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모두가 형제이다』라는 말은 공의회 신학의 핵심적인 선언이 되며 지난번 공의회를 요약할수 있는 말이다 우리가 형제인 까닭은 한 하느님의 자녀요, 그리스도의 형제요, 성령의 그릇이요, 성모마리아의 자녀이기 때문임은 두말 할 나위가 없다.
또 공의회는 비그리스도교 선언에서도 『우리가 그 누구에 대해서나 형제적으로도 행동할 것을 거절한다면 만인의 아버지이신 하느님께 호소할 수 없을 것입니다』라고 하였다.그러나 한국 교회는 아직도 교구와 교구, 본당과 본당, 도시와 농촌, 우리와 이웃사이에 많은 단절과 유형무형의 장벽들이 가로놓여 공의회가 가르친 형제적인 관계를 서로가 받아들이는데 있어서 매우 미흡하고 인색한 점마저 없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구를 달리하는 도시본당이 교구와 교구간의 높은 담을 헐고 도시와 농촌간의 단절을 이어 맺어 서로가 형제애를 나누었다는 사실은 비록 그것이 학생사목의 차원이라고 할지라고 이는 공의회의 정신과 가르침의 일단을 선도적으로 구현한 이후 시대의 사목잭 특징의 일면이 공동체 사목이라고 한다면이는 본당차원을 넘어서 보다 넓은 공동체에까지 거시적으로 확대되는 것이 아니고서는 소단위 공동체의 폐쇄성에서 벗어날수 없을 것이다.
본당 공동체는 교구공동체로, 교구공동체는 전국 공동체로 확충되어 온 교구가 공동체요 전국의 모든 교구가 하나의 공동체라는 관념과 의식이 하루 속히 계발되고 고착 되기 전에는 우리가 말하는 형제애란 유명무실한 것이 되고 말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두의 일치를 부르짖기 전에 선행형제애의 교류가 보다 촉진되어야 한다.
이런 시각에서의 사목적인 시도가 바람직하던 차에 전술한 두교구간에서 이것을 시도 했다는 사실은 매우고무적인 일이며 우리모다가 크레 환영할만한 일이다. 또 우리는 이런 시도가 학생사목의 차원에서 시작됐다는 점에 대해서도 큰 의미를 부여해본다. 왜냐하면 우리 기성세대의 완고함과 폐쇄적 사고방식, 그리고 분리적 사회관을 무너뜨리는 일은 그리쉬운 일이 아닐진대 미래교회의 주역이 될 학생들에게 희망을 걸고 학생사목의 차원에서 시도된 것은 참으로 현명한 배려라고 보기 때문이다.
오늘의 세계와 인류사회가 당명한 모든 과제는 뭐니 뭐니 해도 궁극적으로는 모든 인간이 형제애를 발휘하는 일이다. 이를 위해 우리 교회는 소명 의식을 갖고 그리스도적인 현신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그러자면 우리 교회는 하느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 인간과 모든 자연까지도 하느님의 은총안에서 만나는 사귐의 신비를 더욱 구현해야 한다.
요컨대 하느님과의 수직적 사랑을 축으로 모든 인간과의 수평적 사랑이 불가분의 관계 에 있다는 것과, 수직 수평적인 사랑의 그 어느 한쪽에만 치중하는 것은 온전한 사랑이 될 수 없다는 것과, 이 두가지를 하나로 묶자면 인간끼리의 사랑도 하느님께 대한 사랑만큼이나 진실해야 함을 더욱 깊게 인식해야 한다.
너는 너, 나는 나라는 식의 사귐이 있는 곳에 사랑이 있을 수 없으며 나는 너, 너는 나라는 동질성위에서 사귐의 공동체를 이루어 서로가 뜨겁게 사랑하는 것이 이상적인 교회상이다.
사귐은 우선 관심을 갖는데서 시작되기 때문에 상대방에게 도움을 주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자 하는데 인색하지 말아야 한다. 이런 점에서도 두 교구의 도ㆍ농본당은 모범을 보였으니 아낌없는 찬사를 보내는 바이다. 이것이 더욱 파문을 일으켜 교구간 도농간의 하느님의 백성들의 교류가 더욱 촉진되고 형제애가 메아리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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