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 그날도 오늘처럼이나 무더운 날이었다고 생각된다. 주로 50대 60대 영감님들로 구성된 우리본당 구역장 회의에서 복날을 그대로 보내기는 좀 섭섭하다 하여 견공 한마리를 천당 보내기로 했다 도시의 처녀들이 들으면 오만상을 다찌푸릴 일이지 만 시골 영감님들의 여름 파틴는 이것보다 더 좋은 것이 없는줄로 안다. 준비가 다 되었으니 먹으러 오라는 연락을 받고 찾아간 곳이 하필이면 오봉산이라 불리우는 작은 야산중턱에 자리잡은 ○○사절 옆일줄이야. 이미 멍석이 깔리고 음식이 차려져서 내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던터라 장소를 옮기자고도 못하고 타령도 한가락씩 뽑아제꼈다. 파티가 끝나고 뒷처리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스님 한분이 우리쪽을 향하여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나는 가슴이 덜컥 내려 앉았다.
천주교 신자들로서, 더군다나 신부로서 이게 무슨 버릇없는 짓인가고 금방 불호령이 떨어질 것만 같았다. 그러면 참말고 무슨 꼴망신이람. 그런데 나의 추측은 전혀 빗나갔다. 연세가 지긋해 보이는 그스님은 우리앞에 서서 환하게 웃으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닌가. 『아니 왜 좀더 깬모양입니다』그분은 조계종 소속 양 스님이라고 했다. 우리는 겨우 정신을 차리고 모두들 인사를 나누었다. 정말 죄송하게 되었다는 사과의 말과 함께. 그로부터 이를 후던가, 뜻밖의 일이 생겼다. 양스님이 우산으로 뜨거운 햇 빛을 가리고 10리나 되는 우리집에 찾아온 것이다. 이번에는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오후 시간을 다 보냈다. 저녁식사도 함께 했다.
불료에는 문외한인 나였지만 우리들의 이야기는 그렇게 꺼끌꺼끌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양스님이 될 수 있는대로 불교의 어려운 교리에 대한 것은 피하려 하였기 때문이었다. 며칠후 , 역시 무더운 한낮에 양스님의 큰 유리를 한장 옆에 끼고 땀을 뻘뻘 흘리며 찾아 왔다. 지난번에 왔을때, 응접 탁자에 유리가 없어서 유리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넓이를 자로 재 갔다는 것이었다. 양스님은 덧붙였다. 『그냥 신부님한테 드리고 싶어서 드리는 거야』그냥 주고 싶어서 주다니. 나도 그런 적이 있었던 우리 본당 주최 동네 추수감사 축제때에는 양스님이 아끼던 예쁜 화분을 보내주 어서 제대 앞에 놓아 두었었다. 그러다가 올해 이른 봄에 그분은 소식도 없이 어디론 가 떠나버렸다. 불교에서는 본래<떠날 때는 말없이>가 불문율처럼 되어 있다던데 사실인 모양이다.
시끌 어린이들 서울구경도 못했을 거라고 동네 아이들을 데리고 창경원에까지 데리고 갔던분인.
며칠 사이에 나는 전혀 다른 두 사람의 우리 천주교 신자를 만났다. 하나는 가져간 사람이고 또 하나는 가져온 사람이다. 둘다 개인적으로 그렇게 친숙한 사이는 아니었다. 그런데 한사람은 우리집에 왔다가 내가 미사 드리러 성당에 들어간 사이에 내 책상 설합에 들어있던 공금 몇십만원을 집어가지고 달아났고 또 한사람은 어려운 성당에 ㅡ 사실은 그렇게 어려운곳도 아니다ㅡ필요한 것이라도 사라고 우선 이것만 받으라면서 몇십만원을 가져왔다. 책상설합 속의 공금이 없어진 것을 알았을때 나는 별로 당황하지 않았다. 그것이 술값으로 소비되지 않고 어려운 살림에 라도 보태진다면 천만다행이겠다.
내가 갑자기 성인군자가 된 것일까? 몇십만원을 받으면서 나는 애초에 조그만전 꾸어서 늘 장소가 마땅치 않은 우리동네 아이들을 위하여 성당마당에 놀이기구를 설치해야 겠다고 마음먹었다. 양스님이나 요근래 만난 두 사람이나 모두가 다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더위를 잠시 잊어본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