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달전 만해도 금년 여름방학은 세상 없어도 번화한 일들은 잊어버리고 자유로운 시간을 가져야겠다고 굳게 다짐한 터다.
그런데 그 거창한 계획이 하나도 실현되지 못하고 2학기 개강이 되었으니 또 한 학기간 시간에 쫓겨야할 것같다.
정해진 24시간이 하루라는 것은 50평생 살아 오면서 너무 나도 잘 터득했고, 또많은 사람들이 한결같이 「시간은 유수같다」라던가「세월은 화살과 같다」고들 하는데도 실상 시간의 소중함을 모르고 살아온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사람마다 이상이 다르고 따라서 각자의 계획이나 희망도 수없이 많겠으나 대부분 그반도 이룩하지 못함을 절감한다. 일본 속담에「예정은 미정이기에 때때로 변경할 수 있다」는 말이있다. 과연 한치앞도 모르는 인간의 불완전성을 잘 표현한 말이라 하겠다. 그러나 사실은 변경된 그 자체는 내마음으로 인해 변경된 것에 불과하다. 독서의 분량이 잠으로 줄었고, 글을 쓰다가 머리를 좀 식힌다는 구실로 TV에 흥미를 쏟다보니 내일로 미루고, 저녁기도때는 가족과 함께 로사리오기도를 바치겠다는 값싼 신앙심이 저녘기도만으로 생략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런데 때가 되면 여축없이 찾아 먹는 식사시간은 그렇지가 않다. 아무리 인간이 「이성적 존재」라고 해도 강한 외지력만으로는 본능적인 욕구를 억제할 수가 없다. 아니 어떻게 보면 동물 이하의 욕구 때문에 절대하지 못한 탓으로 인간에게만 보여지는 위장병은 확실히 과식에서 온 결과이다.
계획의 절반도 성취하지 못했다는 변명과 함께 허송생활을 했지만 그런대로 한가지 일만은 뜻있는 일이 아니었을까 하고 내 나름대로 생각해 본다. 그것은 무덥던 일주일간을 방송통신 대학에서의 강의시간으로 보냈던 일이다.
환경의 탓으로 남과 같이 정상적인 학교생활을 못한 많은 사람들, 그중에는 나이든 사람들도 많지만 아무든 평소 방송을 통해 청취한 학과를 실제로 강의를 받음으로써 총정리하겠다고 그 무더운 날씨에 하루 8시간씩 노력하는 학생들과 만났던 것이다. 한마디 한마디를 경청하는 그 진지한 태도에서 뭔가 새로운 자극을 받기도 했으며 또한 교육의 본질을 다시금 느끼게도 했다.
무덥고 길었던 여름의 막바지에서 우선 현재까지 있게 해주신 하느님께 정녕 감사드릴 뿐이다. 내가 잘나서 이 시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며 더우기 남보다 박식해서 가르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자만할 수 있겠는가? 며칠전 부음을 받은 야고보군보다 내가 무엇이 달라서 생명의 연장을 기뻐할 수 있단 말인가?
9월이 오면 다시 시작하자. 비록 그때가서 또다시 실패와 나태, 그리고 좌절감의 연속일지도 모르겠지만. 나약하고 우유부단한 내 자신을 아시는 하느님께 의존할 뿐이다. 그리고성 아우구스띠누스처럼 「내가 스스로 아는 것도 고백하고,스스로 모르는 것도 고백합니다. 내가 스스로 안다는 것도 주께서 내게 비쳐주셨기 때문에만 아는 것이고, 내가 스스로 모르는 것도 당신의 얼굴의 광채가 낫과 같이 비칠때까지는 내가 알지 못합니다」고 고백할 따름이다.
새 생활을 위해서 권고하시는 바오로사도의 「오히려 마음과 생각이 새롭게 되어 하느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새 사람으로 갈아 입어야 합니다. 새 사람은 올바르고 거룩한 생활을 하는 사람입니다.」라고 하신 말씀을 실천하도록 노력하면서…
지금까지는 인천교구 고잔본당주임이신 호인수 신부님께서 수고해 주셨읍니다. 이번호부터는 효성여대 역사교육학과 선군성 교수께서 집필해 주시겠읍니다.〈편집자 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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