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우리 가족들이 함께 장보려고 마트를 갔다. 그곳에서 아이들이 원하는 장난감도 하나씩 골랐다. 아빠가 사준다는 말에 신이 난 아이들은 자신들이 고른 장난감을 장바구니에 담지 않고 직접 계산대에 가져왔다. 여기서 작은 소동이 발생했다.
다들 아시겠지만 직원들은 손님들이 물품들을 올려놓으면 바코드를 찍어 계산한다. 큰딸은 계산해야 한다는 말에 자신의 물건을 올려놓았는데, 작은 아들은 싫다고 버텼다. 잠깐 놓았다가 다시 갖는 것이라 해도 말이 통하질 않았다. 어떻게 설득을 하고 이해를 시켜도 소용이 없었다. 결국 아들이 함께 계산대에 올라 겨우 바코드를 찍고 내려갔다.
이 아이가 왜 그랬을까? 자신의 것을 빼앗길까봐 두려웠던 것이다. 집으로 돌아오며 혹시 이 아이의 모습이 바로 내 모습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려놓지 못하기에 더 좋은 세상을 체험하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주님을 따르는 길의 핵심은 내려놓는 삶이 아닐까. 예수님은 모든 영광과 권세를 포기하시고 이 땅에 가장 비천한 모습으로 오셨다. 그리고 이 땅을 사시는 동안 하느님과 그분께서 사랑하시는 인간들을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내려놓으셨다.
그리스 사람들은 세 가지 요소를 통해 인생을 배운다고 한다. 먼저 기차역을 보며 인간에게 언젠가는 종착역이 있음을 배우고, 둘째는 바다를 보며 자신보다 넓은 세상이 있음을 배우며, 셋째는 물이 흘러내리는 것을 보며 세상에 집착하지 않는 법을 배운다고 한다. 그들은 세상에 집착하지 않는 법을 배우며 탐욕의 노예가 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탐욕으로 인해 인간의 행복을 상실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혹시 우리는 지금도 너무너무 움켜쥐고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성찰해보았으면 한다. 내가 지금까지 쌓아온 경험과 경륜을 움켜쥐고 있고, 내가 열심히 공부한 지식을 움켜쥐고 있으며, 내가 땀 흘려 이룩한 실적과 성과를 움켜쥐고 있다. 가끔은 이런 모든 것을 내려놓는 연습도 필요하다. 내려놓음은 스트레스로부터 자유롭고, 내려놓음은 다른 사람의 기대로부터 자유로우며, 내려놓음은 초조함과 중압감으로부터 자유롭다. 그동안 우린 충분히 움켜쥐는데 익숙해져 있다. 부와 명예를 움켜쥐고 유지하려고 전전긍긍하고 있다. 때로는 이 모든 것을 내려놓을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 힘들고 외롭고 지친 삶에서 내려놓을 줄 아는 삶이 지혜로운 삶이 아닐까.
내 것을 포기하고 주님이 주인이 되시는 삶. 내 것을 내려놓을 때 하느님으로부터 채워진다는 말은 내가 주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으면 주께서 내 안에 다시 사신다는 진리와 같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정말로 사랑하신다. 하느님의 평가 기준은 세상의 기준과 분명 다르다. 내가 어느 학교 출신이든지, 직업이 무엇이든지, 어떤 집안 출신이든지 그런 것으로 우리를 평가하지 않으신다. 하느님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하느님 앞에 어떤 모습으로 서 있는가 하는 것이 하느님께서 우리를 보는 기준이다.
참으로 힘든 세상을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우리의 가슴에는 세상에서 입은 상처가 응어리져 있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 내일에 대한 염려로 인해 고통을 당한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을 향해 다 내게로 오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자.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와서 쉬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당신을 통해 참 행복과 기쁨을 느끼라고 말씀하신다. 자랑스러운 한국교회 선조 신앙인들이 자신들의 목숨을 내놓으며 영원한 생명을 얻었듯이 우리도 부활로 영원한 생명으로 나아가기 위해선 내려놓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기쁘고 거룩한 부활시기를 지내며 우리 모두는 자신을 낮추고, 내려놓는 연습을 이제부터라도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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