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대신 글로 세상을 풀던 친구는 십 몇 년 전 마리아가 되었다. 마리아가 어떠냐고 하자 황송하게 그 이름을 어떻게 받느냐고 했다. 마리아는 큰 병을 앓았다. 죽음의 바닥까지 간 그에게 삶은 감사와 소중함이 되었다. 우리는 성모님께 매달리며 눈물의 기도를 드렸고 그 후 외아들이 입대했다. 훈련병 엄마는 훈련소에 늘 아들과 같이 있었다. 자신이 끙끙 앓던 때보다 더 심하게 아파했다. 산을 찾아 그 매력에 날마다 빠져든다는 메일이 날아왔다. 마리아가 만나는 산을 나도 만나고 있었다. 아들은 쉽게 자기를 포기할 수 없어 적응이 힘겨웠다. 엄마가 쓰는 이등병엄마의 편지는 눈물로 가슴으로 수많은 엄마들에게 위로가 되었다. 친구는 마리아로 살고 있었다.
방학에는 미리내 천진암 남한산성 감곡 마재 등 서울 주변을 순례하고 신앙과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며 20대의 청춘으로 돌아간다. 눈부신 청춘의 우리는 시내를 휘돌며 정신적인 깊은 방황을 했다.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을 암울한 고통을 만들던 시대였다. 신앙이 없어서 한없이 건방졌고 오만했고 무례했고 신을 거부했지만 깊은 허무와 회의에 빠져들었다. 그러다 창녕으로 내려와 세례를 받은 뒤, 어느 날 감상과 허무와 불안과 우울 등 회색빛이 사라진 것을 알았다. 주님이 계셨다. 당시는 그것이 은총인 줄 몰랐다. 친구와의 수많은 편지 속에는 풍경과 신앙과 책들이 들어 있었다. 친구가 성가정의 축복을 받은 날은 참으로 감격스러웠다.
힘든 일에는 감당할 만큼 견디게 해달란다고. 그 끝이 궁금하다고. 성모님의 사랑을 받는 마리아는 고통이 축복임을 잘 알고 있었다.
지난겨울 눈 쌓인 마재에서 우리는 수첩 속에 순교자 기도 하나를 더 보태었다. 학생 때 소설 흉내를 내며 쓰던 회색노트를 이제는 추억의 푸른 수첩으로 만들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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