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 파종해서 손질하고 가꿨던 농작물이 비와 태양의 혜택으로 이미 추수한 것도 있지만 멀지않아 다 거두어들일 때가 올 것이다.
올해는 유독히 과실도 풍성하거니와 그 맛도 상당히 좋은 것 같다. 추석을 전후해서 여러가지 과실들이 시장이나 상점에 쌓인 것을 보게 되면 확실히 가을을 실감하게 되고 자연의 혜택이 다시금 고맙게 여기진다.
우리가 살아오면서 수없이 계절의 순환을 체험했으면서도 그 심오한 이치를 알려고 하지도 않았거니와, 그저 자연적인 현상만으로 여겼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순환의 법칙」을 의미 깊게 생각하는 사람은 인생에 결부시켜 가령(봄)은 탄생으로 보았다. 만물이 소생하는 계절과 같이 탄생은 곧 부활로도 생각하는 것이다.
다음으로「여름」은 모든 식물이 그 무더운 날씨에도 강인하게 버티면서 자라나는 시기며 따라서 인생행로에 있어서도 가장 중요한 성장기요 또한 귀중한 활동기라는 것이다. 가장 발랄하고 이상에 넘친 그런 시기인 것이다. 「가을」은 추수의 계절이다. 마찬가지로 인생에 있어서도 살아온 과정을 돌이켜 보면서 정리해야 할 때인 것이다. 불가능이란 있을 수 없다고 여기면서 그야말로 기고만장 했던 그 젊은 패기는 간데 없고, 마치 모든 식물의 파릇 파릇한 잎이 누렇게 시들듯이 사람도 마찬가지로 주름살이 늘아나고 신체적 장애도 많이 나타난다. 속된말로「인생계급장」이라고 하던가.
생물이나 동물이 겨울동안 땅속, 물속 등에서 생활활동을 멈추고 수면상태에 있는 현상을 국어사전은「동면상태」라고 했다. 그러나 인간만은 비록 육체는 죽더라도 연혼은 영원히 산다는 희망속에 살아가는데 큰의의가 있는 것이다.
좀 이른감은 있어도 분명히 추석때는 햇곡식이라든가 햇과일을 먹을 수 있으니 우리나라는 다소 일찌기 추수에 대한 감사를 지내는데 반해 미국의 경우는 11월 넷째 목요일을「추수감사절」로 지내고 있다. 시기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가을 곡식을 거둔 뒤에 하느님께 감사제를 올리는데는 같은 뜻이 있는 것이다.
얼마전 과수원을 경영하는 학부모가 학교를 방문했다. 그분은『2백주 가량되는 재래종 사과나무로는 수지가 안맞습니다』하기에 그 이유를 물었더니『품종도 자꾸 개발해서 단맛을 더하는 사과를 생산하니 자연히 미각도 달라져 신품종만을 먹게된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근래 우리나라도 일본말에서 유래한 부사(후지)를 더 좋아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값은 다소 비싸도 그 감칠맛 때문에 그것을 즐겨 먹게 되었다.
그전만해도 축이나 홍옥ㆍ국관을 좋아했던 기호가 언제부턴가 변해버린 것이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는 농산물 개량에 불철주야 노력하면서 개발에 힘쓰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자연에 인공을 가해서 새로운 것을 만들 줄 아는 인간의 그 지혜는 분명 현대의 생활상을 크게 변혁시켰다.
그러나 아무리 과학의 진보가 무한한 가능성을 줄것이라는 인간들의 희망에도 불구하고 한번만의 인생을 어떻게 살것이며 또한 어떻게 끝맺을 것인가를 항상 염두에 두지 않으면 안된다. 사과맛을 더 좋게 할줄아는 인간의 능력은 한편 자연을 인간의 마음대로 개조할 것이라고 믿는 오늘에도 확실히 불변의 법칙이 있다면 그것은 계절은 반복되지만 인간은 그렇지 못하다는 사실이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