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일 훗날 회고록 비슷한 것을 쓴다면 이런 사연을 기어이 적어 넣을 생각이다. 난 숱한 죽음을 보았다. 무더기로 몇십명이 죽어가는 현장은 말할것도 없이 조금씩 조금씩 죽어가는 한병사의 최후도 고즈너기 쳐다보았다. 솔직이 말해서 그땐 죽음이란 것이 어떤것인지 알지 못했다.
허기에 죽음에 대한 느낌도 없고 그것에 대한 철학(?)같은게 있을 까닭이 없다.
그러나 세월인지 네월인지는 자세히 모르겠으나 그런 것이 내곁을 스쳐간 어느날 문득 죽음이란 것이 참으로 두렵고 두려운 것이다 라고 느끼기 시작했다. 난 사랑하는 내 아버지의 죽음에서 사나이의 의연한 죽음을 보았고 한 인생의 아쉬움을 목격한 것이다. 『저 벗꽃나무 밑에서 한잔 더 마시고 떠날려고 했는데…』
이렇게 말씀하시던 당신의 모습을 연연히 잊지 못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런가 하면 단 한마디의 말도 없었지만 눈빛으로 전하던 친구의 죽음-. 그토록 두고두고 통곡했지만 상금도 잊을 수 없는 그눈빛-그는 친모(親母)의 과거를 용서해주지 못한채 생(生)을 마쳐야 한다는 진하디 진한 후회가 조용한 체념과 함께 들여졌던 순간을 나는 잊을 수 없다.
『대관절…무엇이 인간을 그토록 도도하게 만들었을까?』
자-이제 한 여인의 죽음을 전하자.
네살때라던던가…그녀는 모종의 사고로 불구가 된 것이다. 그녀는 한마리의 벌레가 된것이다. 기는것이 아니라 굴러야조금은 움직이는 여인이었더란다. 헌데도 모질고 모진 목숨은 장장 30년동안 그녀를 묶어둔것이다. 헌데 그녀가 세상을 홀쩍 뜨자 난리가 난것이다. 비통해 젖은 이웃은 다 같이 그녀을 위해 간절한 기도를 무수히 바친것이다.
꼬마녀석들은 학교도 가지 않은채 누나의 갑작스런 주금을 몸부림치며 슬퍼했더란다.
얼마나 알양한(?)어른이 돌아가셨기에 맹인들까지도 그 사연을 듣더니 눈시울을 뜨겁게 하더란말인가. 앞서 적은바와 같이 그녀는 벌떼 같은 인상이었다.
허지만 그녀는 어느 성인에 못잖은 참으로 위대한 한평생을 문득 끝마친것이다고난말고、슬픔에 젖은 사람들을 격려하고 그들로 하여금 미사성제에 임하도록 꾸준히 권했다.
사탕 한알이라도 생기면 동네 꼬마녀석들 입속에 넣어준다. 방학때는 말할것도 없이 틈만 있으면 찾아오는 꼬마친구들을 상대해서 같이 뒤엉켜놀던 30년-.그동안에 무시무시한 귀신 이야기며、배꼽쥐는 도깨비 이야기는 꼬마들에게 일용할 양식으로 주어진 것이다.
그잘난 부모님들의 손길에서 외면당한 아이들에게 그녀는 다시없는 엄마가 되고 누나가 되고 심술없는 친구가 된다.
대체 무엇이 그녀의 죽음에 대해 모든 이를 통곡하게 만들었을까? 흔해빠진 얘기로 「사랑」바로 그것이라고 말해야 하는것인가. 나는 설명할 길 없다. 다만 이런 말을 당돌하게 할 순 있다. 나도 그녀와 같은 죽음이라면 당장이라도 서슴없이 나설 수 있을것같다. 그만큼 위대한 죽음이 또 어디 있겠는가.
청컨대 입에 바른 「사랑」따위의 어휘로 감히 그녀의 죽음을 미화시키지 말길 염원할 뿐이다.
그녀의 잔잔한 죽음에는 필경 천주님의 손길이 있음을 난 본다.
■지금까지 효성여대 선군성 교수께서는 수고해 주셨읍니다. 이번호부터는 방송작가인 오재호씨께서 집필해주시겠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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