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허벌나게(헐레벌떡) 광주(光州)를 내려 다니던 어느날 훔쳐들은 얘기다. 지금 막 할머니 한분이 가파른 빌딩계단을 간신히 올라 서다 문득 눈앞을 가로막고 선 젊은 여인에게 크게 손짓하면서 혀를 내 두룬다. 깊고 잘게 주름진 입술 언저리에 짧은 혀가 더욱 눈여겨 보이는데.
『아이고 영험도 하시더란 말이여. 내가 죽기전에 서울 한번 가봐야 쓰겠다고 신공을 드렸더니…워매이 참에 안 가보게 됐다고…기차도 겁도 안나게 올라 간다면서? 아이구…세상에 원…그 많은 사람들 기차패(표)는 어쩔랑고…나는 몰라…신부님들이 알아서 할테제!…』 사연도 이런 것이다. 모르긴 해도 이즈음 당신이 세상을 떠나시기 전에 서울구경 한번 해 보시길 소원했더니 150주년 여의도 기념행사에 다녀오시게 됐다는 것인데 마지막 말씀이 마음에 와닿는다.
『영험하신 양반이 내 신공을 딱들어 주긴 했는지 말이여…내 기차패는 어디다 부택(부탁)해야 쓸란지 몰라아』티 한점없는 할머니의 이 말씀속엔 「하느님의 길」과 「사랑의 길」이 분명히 드러나있다. 기도를 들어주는 쪽은 「영험하신 분」이고 「기차패를 사줄 분」은 사람쪽이다. 흑자는 영험하다는 어휘에 대해 원시 신앙의 표현이라고 욱박지를 지는 모르겠으나 그러지 말길 부탁하면서 다음 얘기로 옮긴다.
말하자면 말장난으로 그 할머니의 고운 기도를 주름지게 하지말자는 제안이기도 하다. 그런데 우리주변에 알량한 말씨로 사람빈정을 상하게 하는 일이 하많다. 남편과 아이들이 아파트를 나서기 가쁘게 뒷따라 나선 주부님의 말씀이 『우리집은 천주님이 지켜주시니까 도둑맞을 염려가 없다구』
만일 도둑을 맞았을땐 뭐라구 할텐가. 천주님이 안지켜줘서 도둑을 맞았노라고 하실텐가. 물론 꼭 그런뜻에 한말이 아니겠지만 만사가 그런식으로 비롯되다간 이만저만 큰일이 아니다.
다른일이 큰일이 아니라 인간의 모든책임을 도맡아야 할 천주님이 큰걱정이다. 생각해보시라. 안그래도 바쁘고 바쁜양반이 서울 어느구석에 있는 아파트경비까지 떠 맡아야 한다니 얼마나 고달프시겠는가. 문제는 오만불손한 우리다. 한사코 떠넘기는 인간의 속성이 문제다. 어떻게 해서든지 수치로 당신의 사랑을 재야 직성이 풀리는 못된 근성이 큰 일이다. 그러나 「서울구경」의 청을 들어주신 것에 대해 놀랍고도 두려운 마음에서「기차패」를 걱정하시는 할머니의 마음씨를 보시라 하찮고 조그마한 일에 감사할 줄 아는 그 모습을 상상해보자. 너 나할것 없이 과소과대평가 하길 즐기는 판국에 나도 한마디 하자.
분명히 그 할머니의 말씀속에 순교의 혼이 들어 있다. 순명의 넋이 잔잔하게 깔려있음을 본다.
바로 그 할머니가 여의도에 와 계실줄 믿는다. 그리고 할머니의 기도가 성취된 곳이 여의도의 모임이다.
기적을 바라는 이에겐 기적은 일어나지 않는다던가. 그러나 조그마한 일에 갑사하는 이에겐 무수한 기적이 따른다던가.
오늘 여의도 광장에서 할머니의 순교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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