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서울의 여의도광장 신앙대회는 참으로 멋진 믿음의 현주소를 밝힌 모임이었다. 이날 55만 명이 모였다느니 혹은 80만 명이 모였다느니 하는것은 나중얘기다.
그날의 모임은 적어도 얻어 맞기로 이력(?)이난 우리 가톨릭교회가 간만에 기지개를 펴 봤다고 할까… 또 하난 절대로 잊어선 안될 것은 새벽 비밤을 헤치고 달려온 지방교우님들의 그 뜨거운 정열을 가슴깊이 간직해야 할것이다. 서리서리묻어 두었던 농(籠)지기 나들이 옷을 찾아 입고 쥔것이라곤 손때 묻은 묵주만을 들고 여의도 광장으로 오신 귀한 그 분들에게서 콧날이 시큰한 고마움을 느낀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우리의 사제님들이 입당할때 구름덮인 동편하늘에 빛나는 십자가가 나타났다니…때마침 합창단석에 자리잡고 있던 수많은 자매님들은 비명을 지르면서 털썩주저 않았더라나…좌우간 사랑하는 내 배우자도 하늘에 나타난 고상을 보았다고 증언한다. 놀랍고 놀라운 일이다. 기적이다. 무섭고 무서운 일이다. 나는 사랑하는 내 아내를 천주님만큼 믿기에 그날의 기적을 믿어본다. 그런데 내 마음속엔 꿈틀거리는 것이 있으니…
『우리교회는 기적에 인색한데 뭘』하는 생각.
『기적이란게 그런식으로 일어나나 뭘』하는 생각.
물론 그 빛나는 고상을 보지 못했으니 원수같은 내 「대가리」가 그것을 진정으로 믿겠는가 말이다. 쥐꼬리만한 지식같은 것이 한줌 들었노라고 자처하는「대가리」로선 도저히 헤아릴 길이 없다.
그러나 내게도 기적은 있었다. 나는 사실 상당히 자유분망하다고 큰소리는 치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비록 그것이 형식에 불과해도 좋으니 성체앞에서는 무릎을 꿇어야한다고 주장하는 터이다. 그러다보니 여의도 광장에서도 절대로 무릎을 꿇도록 하자고 주장했을 수밖에는-.
그런데 정작 무릎을 꿇었던 사람은 누군가. 빗물이 흥건히 고인 아스팔트에 농지기 나들이 치마가 젖도록 무릎을 꿇고 있는 시골 아주머니 곁에 우두커니 서있는 나는 누군가?
얼굴이 화끈해진 나는 서둘러 무릎을 꿇었다. 골백번이나 『이놈에게 겸손을 주십시요』라고 기도를 바쳤건만 응답 한번 없으시더니 시골 아주머니를 통해 준엄하게 꾸짖으시는 당신의 목소리를 들은 것이다. 내말은 오만불손한 이놈에게 당신이 그런식으로 기적을 보여 주시더란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또 있다. 그 기적을 받아 뫼시는 내가 문제다. 그 잘난「대가리」로 처신하면 또 기적도 기적처럼 사라질테니까. 이글을 쓰는 순간에도 나는 세상을 두렵고 두렵게 살아보자고 천만번 마음은 해 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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