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님!
어느해 여름으로 기억됩니다. 제가 그 무덥고 긴 여름의 한 나절에 수박 한통을 들고 당신을 찾았을 땐 참으로 안타까운 모습으로 반겨 주셨읍니다. 입술은 터지고 손가락은 으깨진 채 파리떼가 손끝에 윙윙거리고. 허리띠도 없는 작업복은 말이 아니었읍니다. 사실 서양사람이 아니었더라면 모르긴해도 올데갈데 없는 거지 모습이었지 뭡니까.
그런데 제가 눈여겨 본것은 당신의 러닝셔츠 였읍니다. 애당초 누우렇게 퇴색돼 버린 낡은것이었지만 어찌나 등짐을 많이 졌는지 걸레조각 처럼 너덜너덜 했읍니다.
아마 당신은 잘 기억 못하실 것입니다. 그때 당신은 성당 개축때만에 혼자 앞ㆍ뒷산으로 다니면서 흡사 개미처럼 돌짐을 지길 수백차례-아무도 눈여겨 보지 않는 뜨거운 여름을 그렇게 누비고 있었읍니다.
『이젠 다 끝났어. 성당바닥에 시멘트칠만 하면 끝나-그런데 돈들어. 천주님이 나한테 시멘트 기술 안줬으니 할 수 없어』
서툰 한국말로 가쁜 숨결을 가다듬던 당신-우린 빨간 수박을 놓고 앉았지요.
한조각의 수박맛에 모든 피로를 잊고 고된 여름의 하루를 감사하고 있읍니다.
그런데 말씀이에요…지난 얘기지만이런 우스개 말씀을 꼭 드려야겠읍니다. 성당개축공사 때문에 당신 죽을 고생(?)을 하고 계시니까 주위 사람들이 뭐라고 말할 줄 아십니까?
『성당은 돈이 많아서 서양사람 놈을 쓴다』고 했답니다. 기실은 한푼이 아쉬워 당신 혼자 돌짐을 졌는데 그 사정을 모르는 이는 돈이 너무 많아서 값비싼 일꾼을 쓰는 것으로 봤다는 것입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아따! 성당에 갔더니 시양(서양)사람 마누래가(마누라) 싯(셋)이나 있던디…』
수녀님을 보고 이렇게도 말하더랍니다.
신부님! 이렇게 말하는 이들을 조금도 나쁘게 생각하진 마십시요. 아직도 수녀님을 신부님의 마누라로 알고있는 이가 얼마든지 있답니다. 어쩜 너무 순박한 것이 무지의 이유가 될지도 모르겠읍니다.
그러나 순박한 사람들이기에 얼마나 착합니까.
80만이 모인 여의도 신앙대회 현장을 보십시요. 쓰레기를 흘리지 말라는 보속이 떨어지자 티끌 한점없이 자릴 정돈하고 떠나는 신자들을 보셨지요?
신부님!
비록 등짐때문에 당신의 온몸이 으깨졌어도 그토록 착한 형제들이 당신 주위에 있음을 잊지 마십시요.
착한 목자에겐 착한양이 따르기 마련이라던가요. 이 가을에 지난 여름의 뿌듯함을 기억하고 있읍니다.
용기를 내십시요. 돌아오는 여름엔 좀 더 큰 수박을 사들고 당신을 찾겠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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